는 느리던 400여명 외에는 오합지졸에 불과 했다. 당시 조선군 가운데 최정 예인 훈련도감 소속의 군사들과 견준다면 거사의 성공은 장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훈련대장 이흥립을 포섭 ... 변변히 해보지 못하고 대북파는 거의 전멸되다 싶이 했다. 그들이 장악했던 권력의 토대가 극히 허약함 것이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대북파 관인들은 반정주체들로부터 폐모논의에 참여 정도 ... 1일 제주도 유배지에서 생을 마감한다. 그의 부음을 듣고 제주목사 이시방이 들어갔을 때는 계집종이 혼자 염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인조 반정 이후 광해군은 강화도로 위리안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