였고, 학당 초기 적당한 교과서가 부족하자 그는 부인과 함께 미국의 중등교육 교과서를 한국의 실정에 맞게 번역, 출판했다.1905년 6월 북감리교 선교부 총회에서 베어드는 한국 내 ... 고등교육에 있어 장로교와 감리교의 협동 방안을 제의했다. 그리고 1906년 조선선교부의 허가를 받아 감리교와 연합으로 4년의 수업연합을 가진 ‘합성숭실대학’(The Union ... 로부터 위임 받은 합동위원회는 해당 문제를 검토하고 대학 위치를 서울로 정하였지만, 한국선교부는 거부했고, 항의를 지속했다. 그리고 베어드는 선교본부의 교육정책에 대한 반대 입장
확인하고 그것이 실제적으로 옮겨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1906년 2월23일 언더우드 집에서 장감연합공회 제1차 실행위원회가 열렸다. 여기에는 북감리교, 남감리교, 북장로교, 남 ... 장로교의 선교회 대표들이 참석하였다. 이 모임은 장감이 교파를 초월해 한국의 복음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크고 작은 문제들을 해결하여 한국선교지의 효율적인 선교를 위한 일종 ... 째인 1890년에는 장로교와 감리교의 선교회에서 각각 11명의 선교사들이 한국에서 일하고 있었다. 이 해에 세례 교인 수는 장로교에 119명, 감리교에 36명, 모두 합하여 1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