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 있었던 유일한 일본인 거주지로서 학계의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조선 후기 왜관은 부산포에만 설치되어 그 지역에 따라 절영도 왜관ㆍ두모포왜관ㆍ초량 왜관 시대로 구분 ... ㆍ무역ㆍ문화 교류는 물론이고 전근대 부산포 기후 환경(날씨ㆍ풍향ㆍ해양ㆍ환경), 각종 사건 사고ㆍ스캔들 등 참으로 무궁무진한 이야깃거리를 제공하고 있다.초량 왜관은 1678년, 두모포 ... 에서 온 사절단의 숙소 공간)이 배치되어, 두모포왜관의 10배(10만 평)로 넓어졌다. 동관은 관수 가옥을 비롯하여 개시대청(매달 3ㆍ8일 개최되는 5일장 형태의 한일 무역 공간
부산 속의 일본 땅류 종 현 지음부산광역시 동구목 차1. 절영도에 묻은 애환 / 32. 두모포왜관의 설치 / 83. 사건으로 지새는 두모포왜관 / 134. 왜관의 생활상 ... 여 설치된 곳이다. 이런 일을 위하여 두모포왜관에는 통상 4,5백명의 일본인들이 조선에 파견되어 왜관에서 생활하고 있었다.그런데 외교와 무역과는 별로 관계없는 동식물의 생육과 형태 ... 들이 마음대로 왜관을 벗어나지 못하도록 엄격히 통제하고 범하는 자는‘난출형’으로 다스렸다.두모포왜관이 설치되고 첫 번째 큰 난출사건으로는‘류대화(柳大華)’가 동래부사로 있을 때인 인조4년
대마도에게 특권을 주었고 소우 씨와 도쿠가와 바쿠후를 공인된 정식 중개자로서 조선과의 외교교섭을 맡겼다. 이렇게 조선과 일본의 관계는 우호적이게 되고 부산포에 두모포왜관을 설치 ... 하여 교역을 하게 되었다. 두모포왜관은 고왜관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두모포왜관에 사신이 들어오고 교섭을 하게 되는데 이번 교섭의 핵심은 무역 재개의 조건을 포함한 약조의 체결과 교환이 ... 었기 때문에 자급자족생활이 불가능하였다. 이에 조선에서 쌀 등을 얻기 위한 것이었다.일본의 사신이 왜관으로 건너오게 되면 진상, 공무역, 사무역의 형태로 나누어 조선과 무역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