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간섭이 미치지 않는 독자적인 대체수입원을 적극 모색하였다. 18세기 이후 지방관청에서는 보정적(補正的) 수요를 위해 화폐를 매개로 한 식리활동(殖利活動), 보폐곡명목(補弊穀名目 ... 었다. 각급 지방관청에서는 자체 환곡(還穀)이나 경사(京司) 및 군문(軍門) 회부곡(會付穀)의 고리대적 운영을 통해서 필요한 재정자금을 마련하고 있었다.특이할 만한 사실은 18세기 ... (統營)은 자체적으로 보유한 군향(軍餉)을 삼납(三納)의 명읍진(名邑鎭)에 산재(散在)시켜 환분례(還分例)로 취모(取耗)하거나 작전(作錢)하여 군납(軍納)하도록 하였다. 환모(還耗
에는 황해도 곡산부에서 대규모 농민항쟁이 일어났다.이 사건에 대한 봉건정부의 대책은 농민항쟁에 가담한 향임이나 서리층에게 대대적으로 탄압을 가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중앙정부의 곡산 ... 의 1은 지방경비로, 3분의 1은 평안도에 저치하여 환곡이나 유사시의 군향으로, 나머지 3분의 1은 호조에 상납하였다. 1798년의 경우에는 관서지역의 전세는 각읍에 회록하여 환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