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 병상에 눕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에게는 왕장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 때 창덕궁 내에는 철종의 아내인 철인왕후 김씨가 있었고 전왕인 헌종의 비였던 명현왕후 홍씨가 왕대비 ... 로 앉아 있었다. 그러나 그 위에 헌종의 어머니 신정왕후 조씨가 대왕대비로 왕실의 어른노릇을 하고 있었다.결국 1863년 철종이 죽자 비상대권을 장악한 조대비는 전일 순원왕후
지 않지만 단정한 느낌을 주었다.통명전의 동쪽에는 통명전과 나란히 자리한 양화당이 있다. 양화당은 병자호란 이후 인조가 이곳에서 거쳐했었다 전해지며, 철인왕후가 이곳에서 죽 ... 설명을 읽었다. 창경궁의 처음 이름은 수강궁이었다. 1418년 세종대왕이 왕위에 오르자 생존한 상왕인 태종을 편안히 모시기 위하여 수강궁을 지었다. 그 후 세조의 비 정희왕후 ... , 덕종의 비 소혜왕후, 예종의 비 안순왕후를 모시기 위하여 성종 15년(1484년) 명정전, 문정전, 통명전 등 궁궐을 크게 짓고 창경궁이라 이름을 고쳤다. 그 후 다른 궁궐과 같이
는 순조의 어필로 되어있다. 이 곳은 병자호란 때 인조가 남한산성에 피난하였다가 이듬해에 환궁하여 거처한 일이 있었고 고종15년(1636)에는 철종비인 철인왕후가 승하한 곳이다.그 ... 에서는 제 22대 정조와 제 24대 현종이 태어났고 소혜왕후와 인현왕후 등이 동아가신 곳으로 이 경춘전은 여러 왕후들이 거처하였던 내전의 중요 전각이었음을 알 수 있다.그 옆에는 환경전이
고종 원년에 철종의 예릉이 드러서면서 서삼릉이라 칭하게 되었다.@희릉-중종의 계비 장경왕후 윤씨의 능@효릉-인종과 인성왕후 박씨의 능@예릉-철종과 철인왕후 김씨의 능10.서오릉 ... 은 이 시기 전후에 完成된 것으로 보인다.9.서삼릉(사적 제 200호)중종의 계비 장경왕후 희릉지로 택하여진 이후 한때 중종의 正陵이 이곳에 있었고 그 아들 인종의 효릉이 쓰여졌으며 ... 과 계비 안순왕후 한씨의 능@익릉-숙종의 비 인경왕후 김씨의 능@홍릉-영조의비 정성왕후 서씨의 능@명릉-숙종과 계비 인현왕후 민씨와 제2 계비 인원왕후 김씨의 능11.송포 백송
남한산성에 피난하였다가 이듬해 환궁하여 거처한 일이 있었고 고종15년(1878)에는 철종비인 철인왕후(哲仁王后)가 승하한 곳으로 현판은 순조의 어필이다.◎ 춘당지원래 창덕궁의 후원 ... 창경궁 답사보고서창경궁은 본시 수강궁으로 태조 4년에 낙성한 후로 자주 사용치 않아 황폐화되어 있다가 성종 14년(1483)에 왕의 조모인 정희 왕후, 모후(母后)인 소혜 왕후 ... , 예종의 비 인순 왕후를 위하여 수리하고 확장함으로써 궁궐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 창덕궁에 있던 왕이 왕후 등을 자주 찾아뵙기도 하고 조신들을 연회하기도 하던 궁궐이었던 만큼 창경
하였으나 후(孝定王后), 대비인 철종비 철인왕후(哲仁王后) 등 세 분의 대비가 생존해 있었다.이들 가운데 대왕대비(속칭 趙大妃)가 경복궁 자경전에 머무르며 1866년까지 수렴청정을 한 ... 에서는 만화당과 함께 가장 규모가 큰 거물로 넓이가 36칸이고 전(殿)인 점으로 보아 대비전으로 헌종 계비 효정왕후의 거처였으리라 짐작된다. 만경전 오른편의 건복합(建福閤)과 뒤편의 만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