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 크奴須久利)를 백제에 사신으로 보내 군대를 요청했다.毛野臣聞百濟兵來 迎討背評[背評地名 亦名能備己富里] 傷死者半 百濟則捉奴須久利 杻械枷 而共新羅圍城 責罵阿利斯等曰 可出毛野臣 毛野臣 ... 고 움직이지 않으므로 잡을 수 없는 형세였다.二國圖度便地 淹留弦晦 築城而還 號曰久禮牟羅城 還時 觸路拔騰利枳牟羅 布那牟羅 牟雌枳牟羅 久知波多枳五城그래서 두 나라는 편한 곳을 도모하여 초승 ... 에서 그믐까지 머무르면서 성을 쌓고 돌아갔는데 그것을 이름하여 구례모라성(久禮牟羅城)이라고 한다. 돌아갈 때 길에 닿는 등리지모라(騰利只牟羅)·포나모라(布那牟羅)·모자지모라(牟雌枳牟
되었다가 흉노에게 길이 막혔다. 【注】능동형 태: *匈奴閉其(=張騫之)道ㄹ. 吏出,不敢舍郵亭,食於道旁,烏攫其肉.……後日,吏還,謁覇. 覇見,迎勞之,曰:甚苦! 食於道旁,乃爲烏所盜肉 ... 는 빼앗을 수는 있지만 한 남자의 뜻은 빼앗을 수가 없다.(27)ㄱ. 乃上書曰:……他廣實非荒侯子,不當代後. 詔下吏. 孝景中 六年,他廣奪侯爲庶人,國除. (史記 樊 灌列傳)2659 他 ... 시키 【注】;1 (물건을) 전달하 다 로 쓰인 傳의 예: ㄱ)庶人不傳質爲臣,不敢見於諸侯,禮 也.(孟子 萬下0702) ㄴ) 執贄請見,必由將命者傳之,故謂之 傳贄. (宋 孫奭 ≪孟子音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