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다의 침입이었다고 하여 병정노란(丙丁虜亂)이라고도 한다. 인조 5년(1627) 후금(後金)의 조선에 대한 제1차 침입(정묘호란) 때, 조선과 후금은 형제지국의 맹약을 하고 양국관계 ... 의 접견마저 거절하고 8도에 선전유문(宣戰諭文)을 내려, 후금과 결전(決戰)할 의사를 굳혔다. 1636년 4월 후금의 태종은 황제를 칭하고 국호를 청(淸)이라고 고쳤으며, 조선
淸중국의 역사와 지리목 차1. 청의 건국2. 中國의 통일3. 청의 中國지배4. 강옹건 시대5. 청대의 경제6. 청대의 사회7. 청대의 문화8. 청의 멸망9. 참고 문헌1. 청 ... 을 이전의 金과 구별하기 위해서 後金이라 부른다. 이 사람이 청의 태조이다. 한편 사르후(薩爾滸)에서 명군을 크게 물리치고 요동평야로 진출하여 遼陽을 도읍으로 정하였고 이어 瀋陽 ... 시키게 되었다. 강희제때에는 명대 환관의 폐해를 실감하고 있었기 때문에 환관의 권력 접근을 막아 淸一代에 환관의 폐는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옹정제때는 서북 변경의 준가르부 토벌 때
.◆시대적 배경광해군의 현실적인 대청외교에 반기를 들고 쿠데타를 일으킨 서인 정권은 집권 후 외교노선을 「친명배청(親明排淸) 정책」으로 급격히 전환했다. 만주에서 새로이 흥기하는 여진 ... 족의 후예들이 세운 후금(後金), 곧 청나라를 배격하고 한족(漢族)의 명나라를 좇자는 정책이 그것이다.인조반정(1623년)이 일어날 즈음의 만주 정세는 극히 유동적이었다. 인조반정
하고 1616년 스스로 한(汗)의 위(位)에 올라 국호를 후금(後金)이라 하고, 선양[瀋陽]에 도읍하였다. 이 사람이 청의 태조이다.명나라는 이를 제압하려 하였으나 오히려 사르후의 싸움 ... ). 또 내몽골로 진출하여 차하르부(部)를 정복하여 대원전국(大元傳國)의 새(璽)를 얻음으로써 1636년 새삼스레 황제의 위에 올라 국호도 대청(大淸)으로 고쳤다. 이 시기에 명
). 명나라의 힘이 약해질 무렵, 만주의 여진족은 차차 힘을 키워 1616년에 누르하치가 여진족을 통일하고 후금(後金)을 세웠다. 그리고 명나라 군대를 무찌르고 성경(지금의 선양 ... )에 도읍을 정하였다.누르하치(태조)가 죽은 뒤에, 그의 아들 태종(재위 1626∼1643년)은 만주뿐만 아니라 내몽고까지도 정복하고, 1636년에 나라 이름을 청(淸)이라 고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