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서와 집옥재도서?, ?민족문화논총? 16, 영남대 민족문화연구소, 1996)⑧ ?18-19세기 서울의 근대적 도시발달 양상? ?서울학 연구? 4, 1995⑨ ?대한제국의 서울 ... 을 주도한 친일 개화파였다. 이는 군주권이 약화됨으로써 국가적 구심을 잃는 것을 초래할 수 있었다. (4) 지금까지 한국 사회과학자들은 친일 개화파의 근대화논리를 한번도 제대로 비판 ... 에서는 계속해서 순환논법의 오류가 심화되었다.저자는 친일개화파에 대한 치열한 비판자이다. 예컨대, “북한학계는 갑신정변을 부르주아지혁명이라고 하였지만, 이 정변의 배후에 자본가들이 존재
서 고려해야 할 것은 막연한 용법 그 자체가 아니라 '기호'를 '유학'과의 관련에서 구사하는 경우라는 것이다. 유학과의 관련에서 기호를 거론하는 경우라면, 과거부터 영남지역의 유학파 ... (영남학파)에 대비되는 기호 지역의 유학파(기호학파)의 명칭이 있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을 상기하면, 호남까지 포함하는가 않는가의 의문에 한 가지 시사하는 바가 있 ... 과 율곡성리학의 출현을 보게 되었으며, 퇴계성리학을 모체로 하는 영남성리학의 대하(大河)와 율곡성리학을 모체로 하는 기호성리학의 대하가 열리게 된다.퇴계와 고봉 간의 제1차 사단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