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장영실을 읽고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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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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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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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장영실을 읽고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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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실. 그는 조선 전기 세종 때의 과학자로 기녀 소생으로 동래현의 관노 출신이다. 즉, 천민인 것이다. 어려서부터 과학적 재능이 있었던 그는 제련, 축성, 농기구, 무기 등의 수리에 뛰어났다.
결국 그는 1423년 세종의 특명으로 발탁, 상의원 별좌가 되면서 노예의 신분을 벗어던졌다. 그 후 행사 직이 되고, 1432년엔 중추원사 이천을 도와 간의대 제작에 착수하였으며 각종 천문의 제작을 감독하였다. 1년 후, 호군에 오르고 혼천의 제작에 착수하여 1년 만에 완성하고 이듬해 동활자인 경자자의 결함을 보완한 금속활자 갑인자의 주조를 지휘, 감독하였으며 한국 최초의 물시계인 보루각의 자격루를 만들었다. 1437년부터 6년 동안 천체관측용 대 · 소간의 휴대용 해시계 현주일구와 천평일구, 고정된 정남일구, 앙부일구, 주야 겸용의 일성정시의 태양의 고도와 출몰을 측정하는 규표, 자격루의 일종인 흠경각의 옥루를 제작 완성하고 경상도 채방별감이 되어서 구리 ․ 철의 채광 · 제련을 감독하였다. 결국 1441년엔 세계 최초의 우량계인 측우기와 수표를 발명하여 하천의 범람을 미리 알 수 있게 했다. 그 공으로 상호군에 특진되었으나 이듬해에 그가 감독하고 제작한 왕의 가마가 부서져버려 불경죄로 의금부에 잡혀갔으며 장형을 받고 파직 당하였다.
세종 때에 이룬 찬란한 문화적 업적 가운데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과학 분야의 발전으로서, 장영실은 그와 같은 발전에 누구보다도 높은 기여를 한 뛰어난 과학자다. 역사상 뛰어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을 살펴 볼 때, 보통 신분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지 않고서는 좀처럼 이렇다 할 성과를 낸 사람을 거의 찾아보기가 힘들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볼 때 미천한 신분, 가장 천대받던 노비의 신분으로 과학기술과 응용에 탁월하여 놀랄만한 기계들을 만들어 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장영실은 천민 출신이었지만, 당대의 엄격한 신분 사회의 벽을 뛰어넘어 자신의 뜻을 이룬 인물이다. 하지만 그가 일구어 낸 뛰어난 업적보다는 고난을 이겨내고 세상 앞에 우뚝 선 인간 장영실의 꿋꿋한 모습이야말로 더 큰 교훈과 감동을 준다. 그는 다행히도 어진 임금이었던 세종 재위기에 살았기 때문에 신분의 벽을 뛰어넘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지만, 다른 측면에서 본다면 그와 같은 뛰어난 인재가 있었기 때문에 세종 시절이 찬란한 문화의 융성기로 꽃피울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세종은 나라가 바르게 서려면 백성들의 생활이 안정되어야 한다고 믿고, 농업의 발달과 생산성을 향상하기 위해 고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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