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주사(문화유적)을 다녀와서
- 최초 등록일
- 2007.01.07
- 최종 저작일
- 2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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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가까운 문화유적을 탐방하고.... 내가 관람한 유적지를 소개하고 그에따른
내 감정을 두서없어 서술한글....전통문화의이해 수업을 듣고 레포트로 제출한 것입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11월 11일, 빼빼로 데이날 전통수업을 듣는 친구들과 함께 레포트를 쓰기위해 문화유적을 답사하기로 했다. 장소를 협의한 끝에 우리는 시외지만 가깝고 문화적 가치가 높은 사찰인 운주사로 결정했다. 운주사는 화순을 생활의 터전으로 자리잡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무척이나 익숙한 곳이다. 물론 화순에는 그밖에도 쌍봉사, 자연휴양림, 온천, 고인돌 터 등 여기저기 답사 가능한 곳이 여럿 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운주사는 중․고등학교 시절 소풍을 가기도 했었던 곳이며, 대학생활을 하면서도 몇 차례 친구들과 바람을 쐬는 적절한 장소로 애용하기도 하였던 부담 없는 놀이터였다.
보편적으로 그러하듯이 소풍가고 머리 식히는 곳에 발걸음을 두면서 운주사 곳곳에 널브러져 있는 듯한 탑과 불상들에 대해 열심히 공부를 해 간다거나, 운주사의 역사와 배경에 대하여 호기심은 가질지언정 호기심을 해소하는 것에 몰두한다는 것은 사실상 어려운 일이다. 만약 그러하지 않는다면 이번 기회를 빌어서 그러하지 못했음을 부끄럽게 고백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발걸음을 두는 목적이 답사임을 감안하여 사전조사를 철저히 하였고, 사진을 찍을 배경과 장소를 구상하는 등 시간 낭비하지 않고 최대한 많은 영감을 얻어 오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였다.
그냥 수업에서 교수님의 말씀을 받아 적으며 시험을 위한 필기와는 달랐다. 왠지 모를 기분 좋음( 마치 초등학생 소풍전날 밤의 설레임처럼 )이 찬바람을 맞으면서 운주사를 향하는 내내 계속되었다. 그러다 얼마 지났을까 드디어 운주사에 들어섰다. 내가 어렸을 적 살던 외할머니댁(충남 부여) 근처에도 “무량사”라는 절이 있었다. 그 곳과는 사뭇 다른, 사찰이라 하기엔 뭔가 부족하다는 경솔한 생각이 들었다.(나중에 이건 나의 작은 편견에서 온 착각임을 알 수 있었다. ‘절은 이러이러 하다’는 식의 고정관념 같은 것에서 비롯된 성급함... ) 가기 전에 미리 수업을 통해서 여러 사실들을 알고는 있었지만은, 그 배운 내용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한다는 의미가 있었지, 내 기억속의 절집과 많이 상이할 거라고는 미처 알지 못했었다. 물론 많은 내용들이 수업 내용 일관되고, 중복되는 내용들도 알아왔지만은 역시 “백문이 불여일견”이란 말을 새삼 깨달았다.
일반적인 절집의 형식 같은 것은 아예 찾아볼 수가 없었다. 유서 깊은 사찰이 잊혀졌다가 다시 유명해진 전말도 그러하지만 운주사는 흔히 볼 수 있는 절과는 사뭇 다르다. 그리 큰절도 아니고 경내와 바깥세상을 구분할 만한 변변한 울타리도 없다. 절의 대문이라 할 수 있는 일주문도 얼마 전에야 새로 세워졌다. 대략 1000년쯤의 역사가 서린 이절이 폐허처럼 방치됐다가 다시 알려지게 된 것은 불과 20여 년 전이다. 울타리도 문도 따로 없는 천불산 다탑봉 아래 남북으로 뻗은 완만한 골짜기 안에는 탑과 돌부처만이 즐비했다. 흔히 `운주사 천불천탑`이라 하여 유명한 곳이지만 지금은 석탑 12기와 석불 70여 기만이 남아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수업 내용 중에 들었던 내용이다. ‘운주사 천불천탑’은 정말 천개가 아니라 그냥 수가 많다는 뜻이라는 것을.(『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절 좌우의 산등성이에 1,000개의 석불과 석탑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고, 1942년까지만 해도 석탑은 30기, 석불은 213기가 있었다고 전해지지만...)
참고 자료
http://www.moka.or.kr/kd/6/mun05.html
http://www.unjusa.org/unjusa/look/index.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