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테니스경기
- 최초 등록일
- 2006.06.13
- 최종 저작일
- 20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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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부족하지만 좋은점수 받았습니다.
목차
1.테니스의 역사
2.한국의 테니스사
3.테니스예절
Ⅰ. 비공식적인 시합(친선경기)-
Ⅱ. 공식경기
4.테니스의 기본기술
5.테니스 경기규칙
세계 4대 그랜드슬램 대회
6.테니스 용어 해설
7. 참고문헌
본문내용
1.테니스의 역사
테니스 경기의 원류를 추적하기란 쉬운 작업이 아니다. 구구한 설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대 이집트와 페르시아에서 이와 비슷한 경기를 했으며 그리스와 로마에서도 즐겼다는 것으로 보아 이미 11세기 경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는 주로 왕후 귀족과 사원의 승려들에 의해서 행해지고 있던 볼 게임의 일종으로 손바닥으로 공을 치는 라 뽐므(La Paum)란 게임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 것이 정설이며 이 경기의 발생시부터 오늘날까지 일관된 경기 방식은 볼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볼을 치는 경기라는 것이다.
또한 12세기 초 부터 16세기까지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했던 이 경기는 12세기 프랑스 수도원에서 고안되었다고 하며 쥬 드 폼므(Jew de Paume)(구희(球戱)관)이라고 불렀다. 폼므란 프랑스어로 손바닥을 말하며 이것이 13세기 경 프랑스 귀족과 성직자들 사이에서 쥬 드 폼므라는 손바 닥 게임으로 발전했다. 쥬 드 폼므는 털이나 천을 채워 둥글게 만든 공 을 맨손이나 장갑을 끼고 손바닥으로 때리던 경기로써, 코트의 중앙에 만 든 경계 벽을 넘어서 반대쪽 3방향의 벽 어디에든지 손바닥으로 공을 쳐 넣으면 상대방은 이 공을 직접 또는 한 번 바운드 된 공을 손바닥으로 다 시 쳐서 넘기는 경기였다.
이 경기는 왕후귀족과 승려들이 가장 애호한 스포츠 중 하나이며 중세 유럽에서는 중요한 경기 중 하나였다. 쥬 드 폼므는 수도원의 정원을 모방하여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코트의 구조와 복잡한 룰, 그리고 볼을 만드는 사람을 왕후귀족이 고용한 것 등을 볼 때 이 게임은 왕후귀족의 전유물로 삼았던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14세기 경에는 신흥 세력인 도시 귀족들도 쥬 드 폼므 경기에 열중하기 시작하여 각 도시에도 많은 구희(球戱)관이 세워짐으로써 점차 대중화되어 갔으며 대학생들도 애호하게 되어 중세 유럽의 대학 도시에는 필수적으로 이 구희관이 세워졌다고 한다.
쥬 드 폼므는 손바닥으로 볼을 되받아치는 경기이기 때문에 참가자들은 너무 손이 아파 장갑을 끼고 경기를 하던 중 손 대신에 다른 타구 도구를 찾게 되었으며 15세기 후반에 라켓을 고안하여 16세기 경에는 라켓을 사용하게 되었다. 이 경기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스포츠로서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되었으며 1596년 파리의 인구 30만명에 코트는 250개가 있었다고 한다.
쥬 드 폼므는 게임 자체를 즐기는 것도 있었지만 도박을 즐기는 것에도 큰 비중을 두고 있었으며 사람들은 일 파운드의 내기 돈을 지불하거나 도박 등으로도 이 게임을 즐겼다고 한다. 그러나 이 경기는 17세기경 계몽주의 시대를 맞이하면서 급속하게 쇠퇴하여 일부 애호가들에 의해 겨우 전승되어 왔으며 폐쇄된 구희관은 점차 극장으로 개장되어 계몽주의 시대의 연극 붐에 공헌하게 되었다.
참고 자료
Vic Braden(2000), 테니스2000, 피어슨 에듀케이션
서영호(2000), 테니스 아카데미, 도서출판 홍경
박문환(2004), 테니스 워크북 플러스, 대경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