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 현대 건축]조선인 건축가 조사 보고서
- 최초 등록일
- 2005.11.30
- 최종 저작일
- 199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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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일제강점기에 활동했던 조선인 건축가들에 대한 조사 보고서 입니다.
목차
1. 조선인 건축가의 탄생과 활동의 의미
2. 조선인 건축가 (연대순)
3. 보고서 작성 후기
4. 참고문헌
본문내용
1. 조선인 건축가의 탄생과 활동의 의미
1919년에 박길룡과 이기인이 경성 고등공업학교 건축과를 졸업함으로써 서양식 건축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사회에 진출하게 되었다. 물론 졸업과 동시에 건축가가 되는 것은 아니었고 오랜 실무경험을 거치면서 한 사람의 건축가로 성장하는 것이었다.
일제 강점기의 대표적 기술교육기관이었던 경성 고등공업학교 거축과의 졸업생을 보면 총 389명 중 일본인이 324명을 차지하고 있는 반면, 조선인은 겨우 63명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조선에서 행하였던 일제의 모든 정책과 행정의 목표가 일본을 위한 것이었기에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고 볼 수 있다. 1930년대에 들어서는 해외로 유학하는 사람도 더러 나타나는데 유학지는 주로 일본이었고 미국과 중국에서 유학한 사람이 약간 있었다. 이들이 설계한 작품은 대부분 모더니즘 성향이 강한 것이었다. 이는 학교교육의 영향이라기보다는 당시 사회적으로 불고 있던 모더니즘 운동과 이를 소개한 각종 매체(잡지 등)로부터 제공받은 정보를 활용하였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일제에 의해 지배받는 상황에서 하급관리 또는 기술자의 역할밖에 담당하지 못하였고 또한 수적으로도 10%에 지나지 않던 조선인 건축기술자들이 1945년 광복 후의 혼란기에 이 땅의 건설과 건축분야에서 지도자 역할을 열과 성으로 수행하였다.
조선인 건축가들이 미약하게나마 활동하였던 이 시기에 접한 근대와 산업화의 지식을 근간으로 하여 오늘날까지 그 영향이 이어져 오고 있으므로 나름대로 의미 있는 시기이며, 이 시대의 산물들이 의미를 가진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물론 민족주의적 관점으로 고찰한다면 ‘우리의 것’이 아니라 ‘점령자들의 것’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위에서 언급하였던 복잡다단한 견해 차이에 따라 연구대상이 달라짐은 물론이고 역사의 성립과 불성립이 생기게 된다.
그러나 지금까지 발표된 연구내용들은 조선인이 어떤 형태로든지 관여하였고 어려운 여건에서도 앞선 문물과 기술을 습득하려는 노력이 있었으며 또한 당시에 세워진 그러한 건조환경(건축, 도시 등)에서 생활해 온 우리들에게 영향을 미쳤으므로 오늘날 우리들이 살펴 볼 의미가 있다는 의지를 바탕에 깔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참고 자료
한국 현대 건축 총람 (2) 한국의 현대 건축. 건축가 (한국 건축가 협회)
한국 건축사 연구 1 분야와 시대. 제 5장 근.현대 건축 (한국 건축 역사 학회)
한국 건축의 역사 (김동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