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헌정보학] 문헌정보학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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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등록일
2005.09.10
최종 저작일
20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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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동양의 문헌정보약사
A.중국
B. 한국
C. 일본
2. 서양의 문헌정보학사
A. 고대
B. Greece 시대
C. Rome 시대
D. 중 세
E. 16~17세기
F. 18세기의 서지학
G. 19세기-도서관학의 태동

본문내용

문헌정보학의 원초적으로 도서관의 발생과 도서관자료의 검색도구인 목록의 발생에서 비롯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축적된 정보자료 가운데 필요한 정보를 효과적으로 검색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목록이 발생된 것이다. 그러므로 문자의 발명이 최초의 정보혁명이라고 본다면 목록의 발명은 제 2단계의 정보혁명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상과 같은 관점에서 문헌정보학의 발생과정을 동양과 서양으로 나누어 살펴보자.

1. 동양의 문헌정보약사A.중국
동양에 있어서 가장 선도적인 나라는 중국이었다. 중국에서는 전통적으로 교수학, 목록학, 판본학을 연구했다. 오늘에 이르러서는 정보과학의 도입으로 도약기를 맞고 있다.

1. 선진시대
중국은 5.000년 전 전설시대 때에 이미 문자를 창안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현대 알려지는 최고의 기록물은 갑골복사 형태로 된 것이다.
고대에도 자료를 담당하는 오사가 있었다.
춘추전국시대에는 각 제후국이 모두 사관을 설치하였다. 춘추전국시대말기에는 공자에 의해서 서적이 편찬되기 시작하였다. 이제 공자로부터 학문은 학관에서 배운다는 관념이 타파되었고, 학문과 문화가 관부에서 민간으로 전입되기 시작하였다. 도서의 유통과 전파로 당시 학술사상은 각종 학술유파를 형성할 정도로 발전되었다. 공자는 6개로 맹자는 3개 유파로 나누었다. 이는 학술을 구분한 것이지만 학술을 수록한 도서를 분류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아직 문헌정보학의 맹아는 싹트지 않은 시대이다.

2. 진나라 한나라 시대
그러나 이와 같이 발달했던 언론과 학문의 자유는 진시황의 분서갱유로 서리를 맞게 된다. 진이 전 중국을 통일한 이후 통치계급 내부에 중앙집권을 주장하는 무리와 분봉제후를 주장하는 무리가 논쟁을 벌렸다. 이 논쟁은 결과적으로 분서갱유란 역사적 사건을 초래하게 되었다. 분서갱유의 결과로 민간의 장서는 땅속, 벽과 동굴에 숨겨졌다. 따라서 전국시대이래 백가제자의 국면은 진정되었고 통행되는 서적이 없는 암흑의 시대가 되었다. 한나라의 기반이 공고하게 되자 분서갱유이후 고전이 고갈된 것을 개탄하고, 유서를 모아 서 수장하게 했다.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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