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사] 삼일운동의 주요 참여 계층에 관해

저작시기 2005.05 |등록일 2005.05.16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8페이지 | 가격 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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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서론

2.본론
1) 3․1운동의 배경
2) 3․1 운동의 참여계층과 그 역할
3) 3․1운동과 그 전개
4) 3․1독립만세의 경과
5) 3․1운동의 의의

3.결론

본문내용

애초 독립선언서 발표에는 천도교․기독교․불교․유림 등 주로 종교계 인사들이 고루 안배된 33인의 대표가 참가하도록 예정되어 있었으나, 실제 발표장에는 5인이 불참하고 28인만 참가하였다. 본래 독립선언식은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탑골공원에서 열리기로 되어 있었으나, 민족 대표들은 일부가 불참한 가운데 서울 인사동의 요리집 태화관에 모여 미리 그들끼리만 식을 거행하였다. 이때 최린은 태화관 주인으로 하여금 조선총독부에 신고 전화를 걸게 하고, 독립을 선언하는 한용운의 간단한 식사만 듣고 만세 삼창을 제창한 다음 연행되었다. 반면 서울의 중등학교 이상 남녀 학생 수천 명과 일반 민중들은 탑골 공원에서 오후 2시에 열릴 독립선언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정해진 시간이 되어도 민족대표가 나타나지 않자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한 청년이 단상에 올라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다. 선언서 낭독이 거의 끝날 무렵 학생들은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시위 행진에 들어갔다. 수만 명의 민중들이 호응하는 가운데 시위대는 행진하기 시작했고, 시위대열이 대한문 앞에 이르렀을 때는 온 서울시내가 민중들의 열기와 만세소리로 들끓었다. 시위대는 애초에 질서를 유지하며 평화적으로 행진하였기 때문에 단 한 건의 폭력사태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군대와 기마경찰은 무력을 앞세워 강제 해산에 나서 130여 명을 체포, 구금하였다. 3․1 운동은 특정한 지도자의 지휘를 받아 진행된 것이 아니라 전 민족이 한결같이 참가한 거족적인 반일 항쟁이었다. 1919년 3월부터 5월까지 감옥에 갇힌 인사들을 도별, 계층별로 나누어 살펴보면, 전체 중 농민이 58.4%, 노동자가 3.9%, 상공업자가 13.8% 등으로 민중들이 압도적 다수를 점한다. 3․1운동의 주체가 민중임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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