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사의 이해]한중문화교류(조선과명의 문물교류) 조공무역
- 최초 등록일
- 2005.04.27
- 최종 저작일
- 20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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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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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머 리 말
Ⅱ.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 국제 질서 속에서의 조선
Ⅲ. 조․명 조공무역과 중국문물의 유입
Ⅳ. 명의 문물유입과 조선의 문화발전
Ⅴ. 맺 음 말
본문내용
Ⅴ. 맺 음 말
이상 14~16세기 조선의 대명 조공관계에서 한·중문화 및 문물 교류로 인해 우리의 민족문화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그 배경을 살펴보았다.
조선왕조는 명에 대하여 조공무역체제하에서 사대관계를 가지고 친선과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 결과 조선 전기(1392~1592)에 해당하는 14~16세기에는 朝鮮이 明에 ‘사대의 예’를 취하면서 이렇다할만한 전쟁이 없이 문물의 교류가 활발히 전개되어 민족문화가 창달되었던 것이다.
조·명간의 무역은 어느 편이 보다 적극적이었고 주도적이었는가를 보아야 할 것이다. 조공무역체제하에 명보다는 조선측이 보다 적극적이었다. 조선은 중국으로부터 세계 각 국의 지식 획득의 중요한 관문이었으므로 조선에서는 자주 기회를 만들어 명과의 조공관계를 통해서 경제적 실리를 취하고 발달된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려 하였다. 이렇게 함으로써 국제적으로나 국내적으로 조선왕조의 권위와 안정을 이루는 방편이 되었고 동시에 민족문화 성립에 자극과 활력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조선과 명은 태종대부터 우호 친선적인 관계로 그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진 것은 이러한 조공무역을 통하여 중국의 문물과 세계 각 국의 선진 문물을 보다 많이 수입하려는 경제적·문화적 이익을 얻고자 함이었다. 조선 측의 능동적인 조공무역으로 많은 중국의 선진문물이 명으로부터의 유입되었는데, 조선은 국가체제의 정비와 선진문물의 유입의 필요에 의하여 많은 서적과 의서 및 악기 등을 입수하였다.
특히 영락제 때 편찬된 四書五經大全, 性理大全 같은 유교 경서는 사대부의 필독서로서 유교 정치 유학의 진흥을 위하여 널리 보급할 필요에서였으며, 성리학은 治道와 君臣의 도리를 잘 표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참고 자료
조선과 명의 교류<한국역사연구회>
이책을 뿐만아니라 많은 조명관계서적을 참고하여
작성했습니다. 도서관에 조선과 명의 교류라는 모든 책을 참고자료로 쓰시면 무방할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