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기록으로부터 출발한다. 기록은 사건과 기억과 증언과 입장에 관한 것이다. 역사의 과정은 기록의 과정이다. 역사의 선상에서 한 사회를 살피고자 한다면, 역사 기록이 그 살핌의 앞에 실제로 존재해야 한다. 그래야만 그 살핌은 생명력을 가진 것이 된다.존재했다는 사실은 전하되, 지금 살핌에 그 존재가 실존해서 앞서 있지 못한다면, 그 살핌은 생명력을 가졌다 말하기 어렵다. 한국 고대 사회의 '당시' 사건과 기억과 증언과 입장을 담은 역사 기록의 '상당'은 그러한 형편이다.귀한 역사서가 현존하고 있다. 그 역사서 속 기록들은 우리에게 귀한 역사의 사건과 기억과 증언과 입장을 전달한다. 그러나 역사 기록의 수가 적고 역사 기록의 양이 작다. 역사의 기록은 상대적인 것이므로, 많은 기록이 존재할수록 관찰하여 얻을 수 있는 역사상에 대한 성과는 많다. 그런데, 많은 수의 역사 기록들은 존재했다는 사실만을 현존하는 역사 기록을 통해 전달되고 있다. 이 형편은 삼국 이전의 고대 사회에서부터 고구려·백제·신라·가야 사회에 대한 생생한 재현의 폭을 좁게 만들었다.위의 형편으로 인하여 본고를 두 가지 의지에 중심을 두고 서술하고자 한다. 첫째, 존재했다는 사실만 전하는 역사 기록들은 현재 존재하지 않으므로, 그 내용 자체를 속단할 수는 없기 때문에, 각 국가를 중심으로 역사 기록의 존재 사실과 편찬 시기를 확인하고, 편찬 주체와 편찬자를 관찰함으로서 그 성격을 밝히는 데 초점을 맞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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