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추자료A+)) 조선 세종과 과학기술의 발달과 천재 과학자 이순지, 장영실, 정초, 이천
- 최초 등록일
- 2022.02.03
- 최종 저작일
- 2022.02
- 6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2,000원
소개글
"((강추자료A+)) 조선 세종과 과학기술의 발달과 천재 과학자 이순지, 장영실, 정초, 이천"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조선의 과학실험 방식
2. 조선의 과학자들의 숫자 표기 방법
3. 조선시대 최고의 학문 연구 기관인 집현전
4. 조선시대의 천문학 - 이순지
5. 조선 최초의 해시계, 앙부일구 탄생 – 장영실, 이천, 김조
6. 조선의 자동 물시계, 자격루를 완성 - 장영실
7. 조선의 농업혁명을 가져온 농사직설 – 정초, 변효문
8. 금속 활자(계미자·경자자·갑인자)의 발전 - 이천
본문내용
15세기 조선은 수준 높은 학문과 과학 문화, 기술이 꽃피었고, 정치·경제·사회적으로 안정된 시기었다. 특히 우리나라 과학사에서 가장 훌륭한 발전을 보여 주었고, 유럽, 아랍과 중국 과학수준도 뛰어넘었다. 1983년 일본에서 15세기 세계의 최첨단 과학 기술 52가지를 뽑아 <세계과학사기술사 사전>을 만들었는데, 이 책에 소개된 과학기술 중 29가지가 조선의 것이다. 당시 조선의 과학은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이러한 성과는 장영실, 이순지, 이천, 김조, 정초 등을 비롯한 우수한 과학자와 이들을 뒷받침해 준 세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조선시대의 상세한 과학발달 내용을 살펴보기 전에 과학실험 방식과 숫자 표기 방법을 알아보기로 한다.
조선의 과학실험 방식
과거에는 오늘날처럼 실험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부족했다. 실험 도구나 물질의 성분을 분석하는 시약들이 갖춰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실험 과정을 몸으로 수행해야만 했다. 길이나 둘레를 측정하기 위해 팔이나 보폭을 이용하고, 물질이 어떤 성분으로 이뤄져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는 직접 냄새를 맡아 보고, 맛보고, 발라 보아야 했다.
조선의 과학자들의 숫자 표기 방법
조선의 학자들이 사용했던 방법은 '산목', '가지'라고도 하는 도구를 사용한다. 수를 셀 수 있는 특별한 도구가 없었던 시대에 수를 표기하기 위해 수수대, 싸리, 대나무 등을 매끈하고 짧게 깎은 막대인 산목을 사용한다. 총 42개의 막대를 일정한 방법으로 늘어놓아 숫자를 표기한다. 일 · 백만의 단위는 세로로 늘어놓고, 십 · 천 · 십만의 단위는 가로로 늘어놓아 수를 나타내고, 5는 위쪽에 올려, 음수는 검은색으로, 양수는 빨간색으로 표시했고, 0이 들어갈 자리는 비웠다.
조선시대 최고의 학문 연구 기관인 집현전
조선시대의 과학발달은 연구기관인 집현전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