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과 창덕궁 완벽 비교분석(한국건축사)
- 최초 등록일
- 2019.11.24
- 최종 저작일
- 20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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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 법궁인 궁궐 경복궁, 조선 왕들이 가장 사랑한 궁궐 창덕궁. 그것을 비교해드립니다.
2019년 4월에 직접 답사를 통해 4일동안 경복궁과 창덕궁을 방문하였으며 모든 해설을 청강했습니다. 이후 경복궁과 창덕궁에 대한 모든 책을 통해 간단하게 요약했습니다.
조선 최고의 궁궐 경복궁과 과 왕들이 사랑한 창덕궁을 직접 답사를 통해 찍은 고화질 사진과 알찬 내용들이 정리되어있습니다. 정말 영혼을 갈아서 한달 동안 제작한 ppt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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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궁궐건축
1. 궁궐이란
2. 왕조의 역사
3. 궁궐의 역사
4. 풍수지리설에 의한 비교
Ⅱ. 경복궁 VS 창덕궁
1. 소개
2. 공간구성
3. 배치
4. Q & A
본문내용
조선 법궁인 궁궐 경복궁, 조선 왕들이 가장 사랑한 궁궐 창덕궁. 그것을 비교해보자.
한양의 도성을 결정시킨 가장 큰 요소는 당시 시대 상황에 따라 「택리지」에서 언급한 풍수로 정리가 된다. 한양 풍수의 빼어난 점을 알아보자면, 도성 주변의 산세가 매우 맑고 수려하며 특별하게 이상한 기운이 있다는 점,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이 주변부의 산과 청계천이 흐르고 있다는 점, 도성 내부가 넓고 명랑하며 흙빛 또한 깨끗하며 굳고 희다는 점이 있다.
여기서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조선왕조에서 풍수지리는 분명하도록 궁궐 건설에 있어 강력하게 작용했으며, 건설이 된 이후까지도 꾸준하게 작용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과연 그렇다면 조선을 일으킨 태조 이성계는 왜 한양을 도읍으로 삼고 싶어 했으며, 이에 풍수지리라는 것을 대입시켜 민심을 이끌었다. 앞전에 언급한 바와 같이 원래의 수도는 한양이 아니었다. 또한 ‘조선’이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태조 이성계는 조선왕조를 일깨우며 고려의 구세력 제거와 나라의 번영을 도모하기 위해 풍수지리 사상에 따라 수도를 옮기고 새로운 터에 궁궐을 건립한 것이다.
궁궐이 절대왕권을 보여준다는 것 처럼, 어쩌면 왕의 의사에 따라 궁궐의 사용도와 입지가 달라지 듯, 풍수지리는 어쩌면 절대적인 면모에서 한발짝 물러서 임금의 이상을 실현시켜줄 훌륭한 수단 중 하나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1395년에 완공된 경복궁은 왕이 거처하며 정사를 펼친 조선 최초의 법궁이며 정궁이었다.
창덕궁은 태종 5년에 정궁인 경복궁의 이궁으로 지어진 궁궐로 창경궁과 더불어 동궐이라 불렸다.
또한 임진왜란 이후 궁궐건축에 위태가 찾아왔던 시기에도1610 광해군부터 하여 1868 고종까지총 258년간 조선왕조의 곁을 지켰다.
조선 최고의 궁궐 경복궁, 조선 왕들이 가장 사랑한 궁궐 창덕궁. 그것을 비교해보자.
참고 자료
문화재청 ㅣ http://www.cha.go.kr/main.html
경복궁
조선의 궁궐
직접답사 및 사진, 해설자의 말 기록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