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인가, 국가인가-신라 내물왕 이전 역사에 답이 있다
- 최초 등록일
- 2017.06.12
- 최종 저작일
- 20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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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제 1장. 한국 후식민사학은 일제 문화정책의 사생아다.
2. 제 2장. 누가 민족을 만들었나?
3. 제 3장. 민족을 만든 후식민사학은 역사왜곡 파티를 하고 있다.
4. 제 4장. 한국 · 한국인을 만든 역사 탐구의 정당성이 밝혀지다.
5. 제 5장. ‘민족사’인가, ‘한국사’인가? ― 한국 · 한국사를 보는 역사의식의 전환을 위하여
6. 제 6장. 민족인가, 국가(국민)인가? ― 한국인의 정치의식 전환을 위하여 ―
본문내용
제 1장. 한국 후식민사학은 일제 문화정책의 사생아다.
▶ 3·1운동 이후, 일본은 식민정책의 일부를 문화정책으로 바꾸었다. 이들은 일본 고대사를 통한 일본 국민 창출을 위해 한국 고대사를 말살하고,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주장을 날조하기 위해 한국 역사를 말살했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현대 한국사학은 지난 60년 간 식민사학의 역사체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해방 후 현대 한국사 연구자 집단은 일제 본거지에서 역사가로 훈련받은 사람들이 한국사학의 연구와 교육을 장악하고 있었다. 따라서 1장에서는 일제 식민사학과 한국 후식민사학의 연쇄 관계, 일제 식민 사학의 허구성, 일본 국민을 만들기 위한 실증사학을 밝히고자 한다.
일제 문화정책에 앞장선 대표적인 식민사학자에는 ‘쓰다 소키치’가 있다. 쓰다 소키치는 일제가 발명한 식민사학의 시작점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삼국사기』 「신라본기」의 건국신화를 비롯하여 당시의 대외관계, 영토, 정치·도덕에 관한 사상 등 대부분의 기록을 부정했다. 『삼국사기』를 부정하고 『삼국지』를 연구 사료로 삼으면서 제국주의 일본이 필요로 하는 천황 중심의 역사를 발명했고 한국사를 은폐·말살하였다.
그렇다면, 지난 60여 년 동안의 한국사학은 어떠할까? 1세대 연구자들이 수학한 일본의 와세다 대학은 다름 아닌 쓰다 소키치가 교수로 있던 곳이었고, 이들은 식민사학을 별다른 검토 없이 그대로 받아들인다. 관학파로 일컬어지는 서울대학교 교수 이병도, 손진태를 시작으로 2세대 연구자인 이기백, 김철준, 3세대 이기동, 노태돈으로 이어지는 후식민사학은 아직까지도 일제의 역사체계와 단절하지 못한 상태에 있다. 이의 허구성은 고고학 발굴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백제의 ‘풍납토성 유적에 대한 방사성탄소 동위원소 연대 측정 결과’와 신라의 ‘나정 유적의 발굴’이 축조 연대를 밝혀줌으로써 식민사학의 허구성을 입증했다.
다음으로, 『삼국사기』에 나오는 왜병의 정체를 밝혀 일본 고대사 체계의 허구성을 밝히려고 한다. 일본의 연구자들은 왜가 한반도 남부를 신민으로 삼았다는 ‘임나일본부설’을 발명하고 그것을 근거로 일본 고대사를 만들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