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솔 최현배 선생의 기념관에 다녀온 후 감상문
- 최초 등록일
- 2017.02.09
- 최종 저작일
- 20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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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외솔 최현배 선생의 기념관에 다녀온 후 감상문 입니다
기행문 형식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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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한국사에 대한 정말 기본적인 지식밖에 없었던 내가 이번 강의를 통해 강의의 과제로 근현대사 관련 유적지를 찾아보았다. 정말 많은 유적지가 있었지만 내가 살고 있는 울산에는 타 지역에 비해 그렇게 많은 유적지가 있지는 않았다. 몇 개 되지 않은 유적지 중에서 눈에 띄는 곳은 두 곳이었는데, 강의 중에 동영상으로 봤었던 박상진 의사의 생가와 독립 운동가이면서 한글학자였던 외솔 최현배 선생의 기념관 이었다. 박상진 의사의 생가와 외솔 최현배 선생의 기념관 둘 중 한 곳을 정하기가 무척 어려웠지만 우리나라의 대표 문화인 한글과 관련된 외솔 최현배 선생 기념관으로 결정하였다. 외솔 최현배 선생의 기념관은 울산광역시 중구 병영 12길 15번지에 위치해 있다. 목요일 3,4교시가 이 강의이고, 6,7교시가 전공 수업이 있는데 무슨 일 인지 휴강을 한 덕분에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방문 할 수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울산대학교 정문 앞에서 버스를 타고 중부경찰서까지 가서 내렸다. 중부경찰서부터 외솔 최현배 선생 기념관까지는 걸어서 이동을 했는데, 중부경찰서 버스 정류장부터 외솔 최현배 선생의 기념관 까지 대략 15분 정도 걸어간 것 같다.
<중 략>
먼저 외솔 선생님의 교육이념과 교과서편찬, 교육자의 길에 대한 전시물을 보았는데, 외솔 선생님은 해방 이후 교육 이념과 국어 교과서의 밑바탕을 마련한 분이시다. 1945년 8월 19일부터 9월 20일 까지 조선어학회 상무이사로 취임하여 교육자로서, 학자로서 광복 조국의 국어 교육에 힘썼다. 1945녀 8월 15일, 해당된 나라의 교육방향을 정하기 위하여 미군정청 학무국에 ‘조선교육심의회’가 설립되었다. ‘조선교육심의회’ 교과서 분과에서는 한글로 쓴 교과서를 만들기로 하고 한자는 곡 필요한 경우 묶음표(괄호)에 넣어 쓰기로 결정하였다. 이는 최현배 선생을 중심으로 한 조선어학회 학자들의 ‘한글만 쓰기’주장의 영향이다. 외솔 선생은 1945년 9월 21일부터 1948년 9월 21일까지 미군정청 문교부 편수국장으로 국어 교과서 편찬 일을 하셨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