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 서평 리포트 1. 서론 ‘유토피아’라는 단어는 많이 들어왔고, 실제로 많이 사용한 단어이기도 했다. 또한 영화 ‘주토피아(Zootopia)’ 영화를 통해서도 내게는 친숙한 단어였다. 내가 이해하고 있던 유토피아란 현실에 존재하지 않은 이상의 세계이자 마치 천국 같은 곳으로 그냥 두루뭉술한 한 단어인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이번 서평과제를 통해 토머스 모어가 쓴 를 읽으며 꽤 구체적으로 이상향에 대해 적어져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단어로만 알고 있었던 내 자신이 조금은 부끄러워지며 책을 더 자세히 읽게 되었다. 2. 유토피아 책 내용 는 가상의 인물인 라파엘과 저자인 토머스 모어의 대화형식으로 이루어진다. 토머스 모어가 가상의 인물을 두어 책을 구성한 이유는 책의 많은 내용에서 중세의 영국사회를 비판하기 때문에 토머스 모어인 자신이 말하는 것보다 라파엘을 통해서 비판하는 것이 더 나았기 때문이다. 는 1부와 2부로 나누어져있다. 영국사회를 비판하는 내용은 주로 1부에 나와 있고, 2부에는 ‘유토피아’라는 국가가 얼마나 좋은 국가이며, 이상적인 국가인지에 대해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라파엘이 말하는 유토피아는 모든 시스템이 완벽한 나라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듯이 이상의 국가인 것이다. 유토피아는 사유재산이 없고 모두 공유재산이여서 돈과 화폐가 없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있다면 공휴일에 도시에 나가 구해오거나, 공무원을 통해 아무런 대가 없이 구할 수 있다. 매일 6시간만 일하고, 그 외의 시간은 자유시간으로 책을 읽거나, 자신이 하고 싶은걸 할 수 있다. 도시생활과 농촌생활을 2년 주기로 바꿔가며 생활하고, 농촌생활을 허락을 받고 연장 할 수도 있다. 또한, 정치인들은 부패하지 않았고, 부패할 수 없게 하는 시스템이 잘 작동하고 있다. 대표가 선출되는 방식도 토론과 토의를 통해 가장 덕망 있는 자가 되게 하는 식이므로 그들은 시민들에게 추앙받는다. 시민 개개인 또한 덕을 갖추어 사사로운 것을 탐내지 않고 타락한 생활에 물들지 않았으며 오히려 선을 숭배하고 학문을 추구한다. 또한 모두가 성실하며 각자 맡은 바를 다하기 때문에 충분한 휴식을 취하면서도 일의 능률이 좋아 생산력이 뛰어나다. 덕분에 유토피아는 부유한 나라이며, 그러나 그 이상을 탐내지 않기에 주변국과 전쟁을 일으키지 않는다. 오히려 유토피아는 빈국을 도와주는 위치에 있으며, 불가피한 방어전에만 임하되 그 때에도 무자비한 살상을 금한다. 3. 러셀과 나의 의견 버트런드 러셀의 에서 유토피아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플라톤의 국가처럼, 유토피아에서는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한다, 그 까닭은 사유재산을 인정하면 공공의 선을 증진하기 어려우며 공산제 없이는 평등도 실현되지 않기 때문이다. 모어는 책 속의 대화에서 공산주의가 인간을 게으름뱅이가 되게 하며 고위 관직에 대한 존경심을 파괴하기 때문에 반대한다. 이에 대해 라파엘은 유토피아에 살아본 사람이라면 아무도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고 대답한다. 이는 20세기 공산주의의 실험이 실패로 간 여러 이유들 중 하나를 말하고 있다. 16세기 이러한 개념이 부족 했을 당시 토머스 모어는 이상향을 추구하면서도 이런 부작용이 있을 것임을 예측 했다는 점이 놀라웠다. 엄청난 고민과 생각 끝에 가 나오게 된 흔적의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또 다른 부분에서는 유토피아의 한계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모어의 유토피아에서 사는 삶이 대부분의 다른 유토피아에서 사는 것 못지않게 지루해서 견디기 어렵다는 점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다양성과 변화는 행복한 삶에 필수적인 요소인데, 유토피아에서는 다양성과 변화를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이러한 점은 바로 계획에 의해 조직된 모든 사회가 지닌 결점인데, 상상 속에서든 현실 속에서든 마찬가지다. 이 부분에 대해서 공감을 했다. 책을 읽으며 ‘내가 유토피아에 살아간다면, 과연 행복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에 대한 결론은 당장 몇 년은 경쟁하지 않아도 되는 삶, 공유재산이 넘치는 사회에 행복 할지도 모르겠지만, 모두가 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삶의 반복이 된다면 더 이상 그 삶은 행복하지 않을 것 같았다. 사람들은 자신을 표현하고 싶어 하며, 새로운 자극에 반응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유토피아는 정반대이다. 자유로운 삶을 말하는 것 같지만, 실은 틀 안에 억압되어 있는 삶이라고 느꼈다. 이런 부분에서 러셀의 의견에 공감이 됐다. 4. 결론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는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곳, 이상의 나라로 행복만 존재한 곳처럼 묘사 되어있다. 우리는 모두 행복하길 바란다고 말한다. 사람들에게 자신이 말한 행복에 대해 물어보면 ‘돈이 많아서 가지고 싶은걸 다 사고 싶어요.’,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어요.’ 등 대부분 구체적인 답변보단 두루뭉술한 답변을 할 것이다. 몇몇 사람은 좀 더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 할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는 행복하길 바란다고 했지만 정확히 자신이 바라는 행복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많이 없다. 그와 반해, 토머스 모어는 자신이 행복한 삶에 대해 상당히 구체적으로 서술했다는 점에 놀랐다. 하지만 토머스 모어가 말한 행복한 삶인 유토피아가 과연 정말 행복한 삶인가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위에서 러셀의 의견에 공감하며 말했다시피 나는 아니라고 본다. 똑같은 옷을 입고, 태어날 때부터 자신의 삶이 정해져있는 삶은 자유가 없는 삶이다. 책을 읽을수록 북한과 중국이 생각이 많이 났다. 즉, 마르크스의 공산주의가 생각났다. 마르크스 나름대로 최선의 사회시스템을 고안했지만,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하며 현재 공산주의는 자취를 감추고 자본주의가 전 세계를 둘러싼 사상으로 자리 잡았다.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와 마르크스의 공산주의는 말 그래도 이상의 나라였던 것이다. 유토피아와 공산주의가 유사하다는 점에서 유토피아는 행복한 삶이라고 보기에 어려워 보인다. 토머스 모어도 이런 이상의 나라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유토피아의 또 다른 뜻을 보면 알 수 있다. ‘어디에도 없는 땅’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토머스 모어는 왜 이 책을 쓰게 되고 유토피아라는 나라를 꿈꾸고 있었을까?’라는 의문점이 들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실을 살아가며 자기 나름대로의 ‘이상향'을 꿈꾸고 살아간다. 또한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수많은 타협을 하며 자기의 인생을 꾸려간다. 토머스 모어 역시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걸 알면서도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이상향에 대해서 이야기로 풀어나가고 싶었던 것 같다. 유토피아 / 토머스 모어 지음 ; 주경철 옮김, 을유문화사, 2007 러셀 서양철학사 / 버트런드 러셀 지음 ; 서상복 옮김, 을유문화사, 2019
중국 경제발전 전략의 변천과 의의에 관한 리포트 1. 서론 중국은 현재 미국 다음으로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며,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해 온 주요 경제국 중 하나이다. 현재 중국은 세계 1위 강대국인 미국의 세계 패권에 도전할 만큼 경제적으로 크게 부상했다. 1990년대에서 2000년도까지만 해도 중국의 1인당 GDP가 1,000달러도 못 미치는 수준이었음을 감안했을 때 현재 중국의 경제 발전이 비교적 급속하게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자국 자원 개발과 시장 개방, 내수시장을 통해 다른 선진국 대비 짧은 기간에 급격한 성장을 이룩한 것이다. 또한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으로 외부 자본을 허용한 이후 중국의 값싼 인건비를 목표로 해외 기업들이 우후죽순으로 중국에 진출하면서 많은 기업들의 공장이 자리잡은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한 것도 중국 경제 발전에 이바지했다. 중국은 2019년까지 매년 약 6%의 경제성장률을 보이며 꾸준한 성장세를 보였다. 그러나 코로나19 발생과 확산으로 중국의 2020년 1분기 경제성장률이 ?6.8%로 나타나며 최초로 마이너스를 기록해 경제 성장에 제동이 가해졌다. 그러나 경기부양책 시행과 코로나19 확산세의 둔화로 소비가 다시금 활성화되면서 2분기에는 3.2%의 경제성장 회복세를 보여주었고, 이는 1분기 대비 11.5%의 성장률을 기록하여 OECD 회원국 평균인 ?9.6%보다 압도적인 수치를 기록했다. 코로나 여파로 마이너스 행진을 이어오던 2차, 3차 산업 성장률도 지난 9월 증가세로 돌아섰다. 각각 전년 동기대비 0.9%, 0.4%로 미미한 수준이지만 지속적인 경기회복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 경제 성장은 주시할 만하다. 그러나 국가 경제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국제질서가 과거와 달리 폐쇄적이고 국익 중심적인 양상을 보이면서 이전보다 더욱 전략적이고 다차원적인 접근을 강구해야 한다. 개방된 시장경제가 배타적 보호주의 시장경제체제를 보이고 인류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던 태도에서 중상주의적 개별 국익을 추구하는 태도로 전환공업 생산 합자사로 발전시켜서 사회주의로 개조시키는 기반으로 삼는 것이다. 이와 같은 계획경제로 국영경제의 비율이 19%에서 33%로, 합작사 경제가 1.5%에서 56%로, 공사합영 비율이 0.7%에서 8%로, 개체경제 비율이 71.8%에서 3%로, 자본주의 경제가 7%에서 1% 이하로 변화했다. 이를 통해 경제 집단화를 이룩하고, 더불어 기존 자본주의 국가의 주요 사업으로 꼽히던 중공업과 군수 공업 발전을 추구하기도 한다. 또한 공유제가 순수할수록 사회주의에 가깝다는 마오쩌둥의 신념 아래 사회주의 ‘3대개조(三大改造)’를 완성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1.5계획은 농업 및 공업 생산이 1950년 대비 약 70% 성장하며 어느 정도의 고도 성장을 이룩하게 된다. 그러나 당시 진행한 사회주의 3대개조에 대한 인민들의 반발 여론과 동유럽에서 반공주의 운동과 유혈 폭동이 일어나자 이를 의식한 중국 공산당이 쌍백운동(백화제방, 백가쟁명)을 통해 사상의 유연함을 강조하며 자유로운 사상 비판을 허용하게 된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하게 사상 비판은 반사회주의 운동, 더 나아가 반마오쩌둥 운동으로까지 확산하며 비판의 정도가 날로 거세졌다. 결국 이를 보다 못한 공산당은 반우파투쟁을 벌여 쌍백운동 당시 사회주의를 비판한 블랙리스트 인사들을 우파로 몰아서 청산 투쟁을 전개했다. 이는 중국 국내 반사회주의 정서를 제압하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당시 소련 공산당 20차 대회에서 반스탈린 운동이 전개되면서 이에 대한 통제의 목적도 있었다. 반스탈린 운동과 이에 영향을 받은 동유럽 민주화 운동의 확산으로 중국과 소련은 이념에 있어서 갈등을 겪게 되고 대척점에 서게 된다. 당시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제1서기였던 흐루쇼프가 스탈린을 비판하고 미국과의 협력을 강조하면서 중국과 소련 간의 이념분쟁이 본격화되고 이에 소련은 중국에서 철수하게 된다. 소련의 중국 철수로 중국은 소련의 발전 모델을 버리고, 1.5계획의 가시적인 성과에 영향을 받아 중국의 자력갱생을 강조하며 급진적 성격 운동의 ‘대약진운 산두(汕頭), 하문(厦門)을 경제특구로서 한정하고 지정해 그 특정지역 만을 개방했다. 그 경제특구정책은 기술창구, 관리창구, 지식창구 및 대외정책창구가 됐다. 또한 제6차 5개년 계획을 통해 연해지역과 내륙지역을 구분하여 연해지역은 상하이를 중심의 창장삼각주 경제구를 계획하고, 내륙의 중서부지역은 기존의 산업기반을 활용할 중화학공업기지 경제구를 추진하며 대외개방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이후 제7차 5개년 계획 기간동안 높은 인플레이션과 천안문 사태와 같은 사건이 발생하면서 사회주의와 보수 경제정책으로의 회귀를 주장하는 논의가 대두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덩샤오핑은 이런 보수적인 분위기의 전환을 위해 상해, 심천, 주해 경제 특구를 시찰하면서 개혁개방의 확대를 주장하는 ‘남순강화(南巡講話)’를 통해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뒷받침 할 수 있는 이론을 담화로써 전파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사회주의 이념과 충돌할 여지가 있는 흑묘백묘론과 선부론을 제창하며 역설적으로 사회주의 시장경제 이론을 뒷받침하고자 하였다. 이후 지속적인 항구도시 개방과 경제개방구 건립을 통해 남쪽에서 북쪽까지 이어진 대외개방의 최전방 지대를 형성시켜 적극적인 대외 개방을 실현하여 거시적인 성과를 이루었다. 이후 대외개방 정책은 2001년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의 가입국이 되는 것까지 이루어내며 본격적으로 중국 시장을 개방하게 되며, 이에 따라 국유기업의 민영화가 가속화되고, 부실한 금융기관을 구조조정하며, 환율제도를 개편하고, 관련법 역시 제정하는 절차를 밟게 된다. 또한 금융시장을 개방하여 해외투자를 확대하고, 기타 아시아 국가들과 FTA를 체결하는 등 대외개방의 폭이 급격히 확대되어 21세기의 중국은 급격한 경제 성장을 이룩하게 된다. 이런 경제정책의 배경이 된 덩샤오핑의 사회주의 시장경제론은 사회주의 국가의 거시적인 조절 아래 자원배치에 대한 기초적인 기능을 발휘하는 것으로, 과거 공유제 중심의 경제체제였다면 이제는 공유제를 주체로 한 다양한 소유제를 인정하는 것에서 기본적인존 정책을 강화하였고, 새로운 목표 설정보다 지속가능한 성장방식 전환 정책을 강화했다. 그러나 다양한 정책과 개혁은 당연하게도 이에 대응하는 부작용도 있기 마련이다. 시진핑 주석이 공산당과 정권의 안정화를 위해 지속적으로 반부패를 강조하고 있지만 부패가 아이러니하게도 어느정도 경제를 이끄는 역할도 하기 때문에 이에 따른 기업 소비 위축과 같은 부작용을 유발하게 된다. 따라서 시진핑 정권이 이와 같은 정책과 개혁을 강행하는 데 있어서 동시에 야기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하게 작용할 것이다. 이전 중국 지도부와 다르게 시진핑 정권이 내세우는 것이 중국몽과 같이 국제 무대에 대한 중국의 궐기다. 이전 덩샤오핑 시기에는 천안문 사건과 동서독의 통일, 소련의 해체 등과 같은 이념적 갈등과 대립과 관련된 이슈가 나타났고, 중국은 이런 대내외적 상황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대내적으로 정치적 안정을 기하고 대외적으로 안보위협을 최소화하면서 경제발전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만 했다. 이에 따라 덩샤오핑은 중국이 급변하는 국제정세를 냉정하게 관찰하고, 침착하게 대처하면서, 낮은 자세로 실력을 기르면서, 중국이 해야 할 일을 해나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 과정에서 나온 것이 ‘도광양회, 유소작위(?光?晦 有所作?)‘로, 국제무대에 직접적으로 나서지 말고 숨어서 힘을 키울 것을 강조한 덩샤오핑의 대표적인 대외정책 방침이다. 이후 중국은 도광양회의 자세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며 2010년에는 G2로 성장할 만큼 괄목할 만한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즉, 국제 질서에 개입하여 중국의 입김을 표출할 수 있는 힘을 갖추게 된 것이다. 더 이상 중국 내에서 이루어지는 유소작위가 아닌, 국제 질서에서 중국이 할 일을 하는 유소작위의 의미로 무게중심이 변화하였다. 이에 반응해 나타난 것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위한 중국몽이고, 구체적인 대외정책이 ’일대일로(一帶一路)‘다. 일대일로는 중국에서 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나가는 육상 실크로드 일대(一帶)와 중국에서 출발해 동남아시아를 거쳐 아 복지제도를 확대해 시민의 성취감, 행복감, 안정감을 높히겠다는 의도의 일환에서 계획된 것이다. 이를 통해 과거 ‘가전하향(家電下鄕)’처럼 수요 측면의 부양보다는 소비 고도화 및 상품 고품질화 등을 통해 수요를 적극적으로 창출하겠다는 의도다. 이와 같은 소비 고도화 및 상품 고품질화를 위해 기존의 중국제조2025를 통한 산업고도화 및 제조업의 질적인 경쟁력을 더욱 강화할 전망이다. 또한 도시화의 가속화에 대한 일환으로 기존 도시와 인프라를 재정비하고 개편하는 신형도시화 정책과 중국 권역 개발 계획도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거시적으로 14차 5개년 계획은 새로운 발전 구도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를 그렸다. 구체적으로 국내 대순환을 주체로 한 국내외 이중순환(쌍순환)을 상호 촉친하여 경쟁력을 제고하고 인프라 건설로 혁신력을 향상시키며 높은 수준의 대외 개방으로 리스크 저항 능력을 높인다는 것이다. 4. 결론 중화인민공화국 건국부터 지금까지 중국은 시대적 상황에 맞는 경제발전 전략을 제시하며 중국만의 방향을 추구했다. 건국 초기에는 사회주의 중국의 첫 단계로 사회주의에 맞는 경제 정책과 소련의 방향을 모델로 하여 오로지 사회주의 이념에 맞춘 전략으로 진행하였고, 이후 소련과의 이념 분쟁과 자력갱생에 대한 열망이 중국의 환경에 맞춘 중국만의 경제발전 전략을 야기했다. 하지만 마오쩌둥의 독단적인 정책 전개와 잘못된 이념이 수많은 희생자를 낳았고 심각한 역사적 오명을 쓰게 되었다. 이와 같은 경제적 퇴보를 회복하기 위한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은 그간의 사회주의 중국의 행보와 다르게 실리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으며, 그 결과로 대외개방과 내수시장 활성화를 통해 비약적인 경제적 성장을 이루었다. 또한 국가 정치이념과 경제정책과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제시한 사회주의 시장경제론은 말그대로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사상이 확립되고 구축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이와 같은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을 토대로 21세기에 들어서서는 미국 다음으로 규모가 큰 경제대국으로 성장하였고, 이를 이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을 읽고 난후 감상문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주요한 문제로 사랑의 실패를 이야기하고, 행복한 사랑이야기를 듣고, 수많은 사랑 노래에 귀 기울이며 자신의 사랑을 떠올리고, 무수히 많은 시시콜콜한 사랑 영화를 찾아보는 것은 사랑이 그만큼 우리 삶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위 사람들이 나를 사랑에 죽고 사랑에 사는 사람이라고 표현 할 정도로 나에게는 특히나 사랑이 중요하다. 그래서 사랑의 기술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이나 기억에 남는 구절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 중에서 평소 나의 사랑이 떠올랐던 구절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사랑은 수동적 감정이 아니라 활동이다. 사랑은 ‘참여하는 것’이지 ‘빠지는 것’이 아니다. 가장 일반적인 방식으로 사랑의 능동적인 성격을 말한다면, 사랑은 본래 ‘주는 것’이지 받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이 책의 이름을 보자마자 거부감이 들었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사랑에는 기술이 없다. 그리고 ‘Fall In Love’이라는 구절처럼 사람들은 분명히 사랑에 빠진다. 프롬은 사랑이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사랑의 기술이란 'Give', 주는 것이다. 그는 주는 것이 잠재적 능력의 최고 표현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사랑을 줌으로써 힘과 부와 능력을 경험하므로 주는 것은 박탈당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활동성이 표현되기 때문에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즐겁다고 말했다. 과거의 나는 이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지금껏 해왔던 사랑을 떠올려보면 나는 항상 주는 사랑을 해왔기 때문이다. 이는 내가 사랑을 전혀 받지 못했다는 것은 아니다. 내가 먼저 사랑을 줌으로써 상대방의 사랑을 받았다는 것이지. 내가 처음이라고 기억하는 사랑에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나는 항상 비슷한 사랑을 해왔다. 가령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밥을 먹고 나면 항상 내가 값을 계산하고 내 모든 시간을 내어 그와 함께했다. 딱히 기념일이 아니더라도 선물을 해주고 싶으면 바로 실천에 옮겼다. 이렇게 ‘사랑을 주는’ 행위를 했을 때, 상대가 나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것은 나에게 보람 있는 일이다. 그리고 내가 밥을 산다든지 선물을 준다든지 그의 문제를 대신 해결해 주는 행동을 했을 때, 그가 나에게 느끼는 경외심을 좋아한다. 물질적으로나 능력면적으로 인정받는 것은 물론 힘들지만 나에게는 그만큼 가치 있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사랑하는 이가 나에게 가지고 있는 기대감 때문에 나에게 부담이 오는 한이 있더라도 그에게 실망감을 안겨주지 않기 위해 나 자신을 희생했다. 하지만 현재의 나는 사랑은 주는 것만으로 지속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사랑을 주는 사람도 그로 인해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계속 사랑할 수 있는 것이고,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다. 나는 사랑을 주는 사람이 사랑을 받기만 하는 사람보다 자존감이 더 높기 때문에 사랑을 줄 수 있는 여유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랑을 주는 사람이 처음에는 자존감이 높을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랑을 받는 사람의 자존감이 점점 더 높아진다. 지금까지 나는 사랑을 줌으로써 사랑을 받는 상대보다 좀 더 자존감 높은 사람, 대단한 사람이라고 자기합리화 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그 생각들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나는 아직까지도 사랑하는 대상에게 나의 모든 것을 줌으로써 행복을 느끼지만 그만큼 받고 있다. 아마도 과거의 그러한 내 사랑의 뿌리는 내가 받은 어머니의 사랑에서 온 것 같다. 조건 없는 사랑과 베풂을 전제로 하는 모성애는 세상에 갓 태어난 순간, 우리가 가진 세상에 대한 불안을 잠재워주었다. 갓난아이처럼 나는 불안을 해소하는 방식으로 사랑을 주는 방법을 택한 것 같다. 내가 불안해하는 것은 혼자 남겨질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내가 사랑을 주지 않으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내 곁을 떠날 것이라는 두려움. 이것이 나에게는 너무나도 큰 문제이고, 내가 사랑을 주었을 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내 곁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에 항상 같은 사랑을 해왔던 것 같다. 죽을 만큼 사랑해서가 아니라 이별이 두려워서 만남을 지속해왔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먼저 사랑을 주지 않아도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사랑은 빠지는 것이 아니라 참여하는 것이라는 말은 사랑에 빠진 사람과 그 사랑의 대상이 함께 참여하는 것이라는 것 같다. 「꽃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꽃에 물을 주는 것을 잊어버린 여자를 본다면, 우리는 그녀가 꽃을 사랑한다고 믿지 않을 것이다. “사랑은 사랑하고 있는 자의 생명과 성장에 대한 우리의 적극적 관심이다.” 이러한 적극적 관심이 없으면 사랑도 없다.」 ‘꽃을 좋아하는 사람은 꽃을 꺾지만 꽃을 사랑하는 사람은 꽃에 물을 준다.’라는 말이 있다. 좋아한다는 것은 단순히 그것을 소유하려는 의미이지만, 사랑한다는 것은 내가 사랑하는 대상을 식물을 키우는 것과 같이 성장하도록 돕고 그것을 지켜보는 것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존중한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을 위하여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성장하고 발전하기를 원하며 내가 원하는 것을 해줄 것을 원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책에서 말하고 있는 적극적인 관심이란 ‘존경’인 것 같다. 존경이란 타인이 있는 그대로 성장하고 발전하는 것에 대한 관심이다. 내가 과거에 가장 사랑했었던 사람은 항상 자신의 틀에 나를 맞추려고 했었다. 나는 그를 위해 나의 삶을 거의 포기하고 그의 기준에 맞춰 사려고 노력했다. 그가 그렇게 해야만 기뻐하고 나를 사랑해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나는 항상 곁에 있음에도 나의 삶을 살지 못한다고 느꼈다. 결국 그의 존경 없는 사랑은 나를 무너지게 만들었고 끝이 났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의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그저 좋아하는 감정이었던 것 같다. 그도 나도 서로를 구속하고 소유하려고만 했기 때문에 서로 말은 안했지만, 티는 내지 않았지만 그런 과정에서 점점 지쳐간 것 같다. 진짜 사랑은 그런 것이 아닌데. 존경받는 사랑을 하기 위해 나도 존경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현재 사랑하는 사람은 나를 자신의 기준에 맞추려고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의 모습을 사랑해준다. 그리고 내가 어떤 선택을 하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것에 대해 존중해주고 그것을 함께 해준다. 또한 나도 그가 성장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도움을 주고 있다. 이렇게 지금은 매우 존경하는 사랑을 하고 있고 존경 받는 사람임에 행복하다. 「어린 아이의 사랑은 ‘나는 사랑받기 때문에 사랑 한다’는 원칙에 따르고, 성숙한 사랑은 ‘나는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 받는다’는 원칙에 따른다. 성숙하지 못한 사랑은 ‘그대가 필요하기 때문에 나는 그대를 사랑한다’는 것이지만 성숙한 사랑은 ‘그대를 사랑하기 때문에 나에게는 그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너는 나를 왜 사랑해?” “네가 날 많이 사랑하니까” 이것이 인생을 사는 동안 내가 들어온 사랑의 이유였다. 프롬이 말하는 성숙한 사랑처럼 나는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 받았고, 사랑하기 때문에 그 사람이 필요했지만 나의 사랑이 성숙한 사랑이었을까? 라는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NO’이다. 가장 큰 이유는 나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 전에 먼저 나를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항상 내가 먼저 돈을 쓰고, 시간을 내고, 내가 무언가를 희생해야만 상대가 나를 사랑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있는 그대로의 나는 사랑받을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와 엄마가 함께 타고 있는 비행기가 추락하면 엄마는 아이를 살리기 위해 먼저 산소마스크를 착용해야만 한다. 그 이유는 엄마가 먼저 살아야만 아이를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타인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신을 먼저 지킬 필요가 있다. 같은 문맥으로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나를 먼저 사랑해야한다. 진정으로 성숙한 사랑을 한다면 우리는 그 사랑을 통해 세상을 사랑 할 줄 알아야하고, 그 사랑으로 인해 나 자신도 사랑할 수 있어야한다. 모든 사람들은 온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성숙한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걸리고 또 자라야한다는 생각이 든다. 진정으로 온전한 사랑, 성숙한 사랑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계속해서 들었다. 나는 독서가 ‘읽기’ 자체만으로 완결되는 것이 아니라, ‘쓰기’를 통해 비로소 나(독자)의 것으로 완성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항상 책을 읽고 나면 그에 대한 나의 생각들을 적어보는 연습을 하곤 한다. 글을 쓰면서 책을 읽고 난 후, 내 사랑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좋았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에 기술은 없었지만, 프롬은 이 책을 통해 사랑이란 무엇일까? 라는 질문에 대해 조금은 답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랑에는 정해진 답이 없기 때문에 어렵지만 그만큼 행복하고 아름다운 것 같다.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에 관한 고찰 리포트 비극은 관객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올바른 방법을 볼 수 있도록 가능하게 하는 낙관적 방식이다. 하지만 우리가 비극과 감상을 혼동하는 이유는 우리의 많은 작가들이 삶의 올바른 방식을 찾는데 포기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의 관점에서, 극작가는 절망적인 비관적 관점이 아닌 인간의 사회적 관계 문제를 해결할 낙관적 입장에서 글을 쓸 필요가 있다. 이는 관객들에게 함께 사는 것 또는 사회적 존재로 사는 것의 딜레마에 대한 해결책을 제공하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비극은 낙천주의의 한 형태가 된다. 따라서 인간과 관계되는 희망을 비극과 분리해서는 생각할 수 없다. 슬픔을 감상적인 데서 비극적인 것으로 끌어올리는 데는 이러한 인간의 희망이 필요하다. 밀러는 주인공 선택에 있어서 고대 그리스 비극과 차이점을 보이며 현대비극을 말하고 있는데, 바로 평범함 사람(common man)도 비극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보편적 인간 본연의 모습에서 투쟁 속에 몰락하는 비극의 주인공을 통해 비극적인 감동과 감정을 느낀다고 그는 말하고 있다. [세일즈맨의 죽음]은 미국의 대표적 극작가인 아서 밀러의 1947년작 희곡으로 1930년대를 배경으로 뉴욕의 평범하고 늙은 세일즈맨의 하루를 그린 이야기이다. 그 하루 동안 그는 가정과 직장에서 많은 일들은 겪은 뒤 끝내 자살을 하게 된다. 이 이야기는 그저 한 사람의 인생뿐만이 아니라 그 시대상과 미국의 역사 또한 잘 표현하고 있다. 자본주의 경제체제로의 변화 속에서 한 개인과 가정의 비극을 잘 보여주는 이 희곡의 등장 인물들에 대해 작품 속의 주요 요소들과 장면들과 함께 설명해 보겠다. 윌리 로먼[Willy Loman] 작품에서 가장 상징적인 인물인 그를 한 줄로 설명하자면 비현실적인 꿈을 가진 평범한 세일즈맨이라고 설명할 수 있겠다. 이러한 부분을 작가는 그의 이름에서부터 나타내었다. 그의 이름인 Willy에서는 Willfulness(고집이 센, 병적인 고집)을 떠올릴 수가 있으며 그의 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꿈과 환상을 비프에게 투영하며 그가 이루어주기를 바라는 것 또한 큰 불행을 야기하였다. 나중에 농장과 목장을 동경하는 것에서 나타나듯이 비프 또한 윌리의 아메리칸 드림과는 맞지 않는 사람이었다. 또한 그에게 인기와 매력만 있으면 특별한 노력 없이도 저절로 성공할 것이라는 헛된 확신을 심어 주어 그가 실패하게 되는데 큰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직장과 가정에서의 삶에서 모두 실패를 경험하게 되며 윌리는 점차 파괴 되어 갔으며 결국에 정신적으로도 망가지게 되었다. 자신의 현실을 부정하기 위해 환상을 만드는 정신분열적인 모습도 보여졌으며 과거 또한 재창조하며 회상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현실의 삶과 행복에서 더욱 멀어져 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다 그는 결국 자살을 선택하게 된다. 물론 윌리의 자살에는 도피와 자신의 실패에 대한 속죄의 의미 또한 있지만 그의 자살은 자신의 꿈인 신화적인 아메리칸 드림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하는 마지막 몸부림이라는 의미가 가장 클 것이었다. 자살하기 전에 윌리의 환상에서 그의 형인 벤은 이렇게 말한다. '정글은 어둡지만 다이아몬드로 가득 차있지' 이는 윌리가 자살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다이아몬드로 대표되는 그의 꿈을 어두운 정글 즉, 자살로 인해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죽음으로 유산을 남기는 것은 물질적인 것을 중요시 하며 자신은 받지 못했던 유산을 남기는 것을 하나의 목표로 생각했던 그에게는 어느 정도의 꿈의 실현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는 왜곡된 야망과 꿈으로 인해 자신의 생명까지 판매하는 모습을 보이며 끝까지 세일즈맨으로서의 삶을 살았던 것이다. 그의 삶은 자본주의 체제로 급격히 변화하는 사회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소외되는 인간의 모습을 대표 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의 소모품으로 전략되며 물질보다 더 홀대받으며 존엄성이 파괴된 인간에게 올바른 사회와 자기인식이 가능했을까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① 꿈과 현실사이의 괴리 꿈과 현실의 대비는 개척시대 버를 찾아가려고 할 때에 어떻게 해야할지 알려주는 장면에서도 볼 수 있다. ④ 맹목적 물질의 추구 윌리는 물질적인 성공에의 가치 기준에 외골수의 충성을 다한 물질만능주의의 희생양으로 존재한다. 즉 물질적인 성공의 목표가 실패로 돌아감에 따라 윌리의 정신파멸 현상은 인생 자체의 파멸 현상까지 몰고 간다. 한마디로 Willy는 20세기 미국이라는 거대한 세계에서 물질적, 사회적인 성공을 추구하려고 몸부림치는 새로운 중류계급의 전형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윌리는 변화된 산업사회에서 성공의 허황된 꿈을 달성하기 위해서 구식의 방법을 사용했다. 그러나 이 방법은 현대 사회에서는 부적당한 것이었으므로 그의 꿈은 결코 성취될 수 없었고 따라서 그는 인생에서 실패를 초래한다. ⑤ 그릇된 교육관 아버지의 그릇된 교육으로 Biff는 또한 졸업고사에서 수학에 낙제하여 장학금까지 받아놓은 대학에도 진학하지 못하고 인생의 낙오자가 된다. 그의 동창생 버나드가 그가 수학공부를 게을리하고 있음을 충고하자 이 말을 듣고 있던 윌리는 오히려 비프를 주둔한다. 왜냐하면 윌리의 교육관념은 성공에는 교육이 큰 도움이 못된다는 생각이기 때문에, 비프는 열심히 공부할 필요가 없으며 성공에는 반드시 책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서였다. 또 이러한 그릇된 교육관이 빚어낸 더욱 큰 문제는 자녀들의 도박을 용기있는 행위라고 칭찬함으로 그들의 윤리의식을 파괴하는 점이다. 비프가 물건을 훔쳐다가 쫓기고 있는 사실을 알려온 버나드에게 윌리는 호통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의 도박을 대담하고 용감한 행위로 잘못 판단한다. ⑥ 책임감과 윤리의식 결여 15년전 30년간 일해온 회사에서 해고당하던 날 Boston의 어느 호텔에서 여인과 관계를 가진다. Willy는 자기의 부정한 관계가 발각되자 Biff에게 "She is nothing to me. I was lonely. I was terribly lonely."라고 변명하는 것처럼 고독감과 소외감을 해소시키기 위해서 여인과 불륜의 관계를 맺은 것이다. 즉 그녀와자신만의 진실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으로 보인다. ① 아버지에 대한 불신 Biff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를 굉장히 따랐고, 아버지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옳은 줄로만 알았으며, 아무리 부도덕한 일을 행할 지라도 유리한 족으로 인정을 해주는 아버지가 너무 좋았고, 훌륭한 분이라 여기며 자라왔다. 그래서 수학시험에 낙제를 하고 나서도 아버지의 기대대로 버지니아 대학에 들어갈 꿈을 꾸며, 아버지께 수학선생님께 낙제시킨 것을 수정해 달라고 부탁드려 달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Boston을 향해 갔다. 그러나 그곳에서 불륜을 저지르고 있는 아버지를 보고, 그 동안의 모든 신뢰와 존경과 사랑 따위는 온데 간데 사라지고 그 이후 그를 미워하게 된다. 이는 Bernard가 여렸을 적 Biff가 버지니아 대학에 왜 들어가려고 하지 않았는지에 그것을 포기한 이유, 그리고 아주 다른 사람이 된 이유에 대해 궁금증을 말하는 순간 Biff가 그리도 아버지를 미워했던 이유가 확연히 드러나게 된다. ②발전된 사회에 부적응 Biff는 전원을 꿈꾸며 자기가 있어야 할 곳은 이곳이 아니라며 숨가쁘게 돌아가는 이 경쟁사회에서 자신은 무가치하고 무능력한 존재임을 알고는 그것에 대등해 자신을 변화시키려 하기보다 그것을 회피하려고 한다. 물론 아버지의 가치가 틀렸다는 것을 입증하고 아버지의 방법대로 살지 않기 위해 Willy와 상반된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긴 하지만 그 모습은 분명 현대 물질 문명에서 패배자의 모습이다. ③현실을 바로 보기 위한 노력 그나마 Loman의 가족 중에서 현실을 직시하고 모든 허구와 거짓들을 폭로하는 인물이 바로 Biff이다. 그로 인해 그동안의 긴장과 갈등이 그나마 해소되고, 읽는 이로 하여금 이 희곡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찔림이 있게 하는데, 이는 현실을 바로 보려는 그의 몸부림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그는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미식 축구선수로 아버지로부터 많은 관심과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그만큼 부모님의 기대가 컸던 탓에 좌절이 있을 때에도 감싸주며 그를 어루어 부도덕하다고 여기기보다 자기 자신이 경쟁심이 지나쳐서 그런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거기에 한 수 더 떠서 그들의 결혼식에 나타나 그들을 협박하여 돈을 받아낼 궁리를 하고 있다. 그도 역시 허황된 꿈만을 좇는 아버지 밑에서 자라났기 때문에 자신의 타락한 모습에 대해 심각한 자아의식도 없이 그러한 타락 생활을 계속한다. 그 결과 Willy는 그에 대한 기대감이 좌절감으로 변하게 되고 반면 Happy는 아버지를 존경하지 못한다. restaurant scene에서 그는 여자친구에게 Willy를 가리켜 "That's not my father. He's just a guy"라고 말해버린다. 린다 로먼[Linda Loman] 린다는 극 중에서 가장 현실적이고 이성적이며 따뜻한 인간이라 할 수 있다. 현실의 모습에 안주하며 만족할 줄 알며 윌리, 비프, 해피의 부족함과 모자람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들을 인간적으로 사랑하며 아끼는 인물이다. 윌리가 가진 환상의 잘못됨을 알지만 그를 항상 격려하며 북돋아 주며 그의 거짓말들 또한 알지만 속아 넘어가 준다. 세일즈맨으로서의 삶과 개인으로서의 삶을 구분하지 못하는 윌리와는 대비되게 그의 직업적인 실패에도 불구하고 그를 남편으로서 인간적으로 사랑하고 존경할 줄 아는 인물이다. ① 남편을 향한 맹목적인 사랑 Linda는 Willy의 이러한 짜증스런 행동을 항상 참으며 사회적 지위가 없고 인생에서 실패한 남편을 무조건 존경하고 숭배했다. 그러나 그녀의 이러한 점들이 또한 Willy를 비극으로 이끌어간 이유인지도 모른다. Willy가 가스 자살을 시도한 것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남편에게 무례한 행동이 될까 봐 그 사실을 밝히기를 싫어하는 장면에서 그녀의 잘못된 인식을 알 수 있다. 또 그녀는 실패한 남편에게 허망한 희망을 심어주어 비극을 초래하기도 한다. 즉 자식들이 그를 하늘처럼 존경하며 세상에서 제일 잘 생겼으며, 인기가 많고, 실은 월부금도 모자라는데 그만하면 돈을 벌어온다 등의 거짓말을 하면서 용기를 북돋워 준다. 그러나 이
사랑할 자유와 명예살인에 관한 고찰 리포트 Ⅰ. 사랑할 자유 ‘사랑과 헌법’을 수강하면서 가장 자주 들려왔던 단어를 하나 뽑자면, ‘사랑할 자유’이다. 생각해보면 사랑과 자유과 인권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철학에서는 자유를 인간의 속성으로 간주하는데, 여기서 자유는 어떤 구속으로부터 풀려나 임의의 선택이 가능함을 의미한다. 사랑 또한 인간의 삶의 일부로서 선택의 연속이며, 이러한 선택에 있어서 우리는 그야말로 자유롭다. 물론, 정신적·육체적으로 미숙한 아동청소년의 보호, 타인의 자유와 권리 보장, 안전하고 건전한 사회 분위기 형성 등의 목적으로 나라에서 사랑을 제한하고 있지만, 이는 국민의 기본권을 크게 침해하지 않는 최소한의 제한이여야 한다. Ⅱ. 여성의 사랑할 자유의 제한 개인적으로 대한민국에서 연애를 하면서 자유가 침해된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공공장소, 길거리에서의 애정 행각은 자제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는 타인에 대한 배려이며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는 않았다. 하지만 법적으로 분명 아무 문제 없을 혼전동거, 결혼, 이혼, 재혼 등의 선택을 하는데, 과연 자유로울지는 의문이다. 한 기사에서 이혼에 대한 두려움이 커짐에 따라 일부러 혼인신고를 늦추는 사례가 많다고 설명했다. 특히 여성의 경우 남성보다 선택에 대한 부담감이 더 크다고 한다. 이혼남보다는 이혼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부정적인 까닭도 있겠지만, 과거에는 여성이 법적으로 보호를 받고자 혼인신고를 서둘렀으나 현재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면서 더욱 신중해지는 것이다. 최근 국민의식 수준이 많이 향상되고 있지만, 아직 여성들이 사회에서 약자의 자리에 서서 이끌려가고 휘둘리는 것도 현실이다. 이렇듯 법적으로 사랑의 자유가 충분히 보장되어 있음에도 사회적 분위기로 인하여 필요 이상으로 선택에 있어서 제한을 받고 있다는 점이 안타깝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지역, 나아가 국가의 구성원에게 있어서 법보다 사회적 인식, 분위기, 또는 규범이 지배적인 경우가 존재한다. 이러한 경우를 극명히 보여주는 예로 파키스탄의 ‘명예살인(honor-killing)’을 들 수 있다. 이에 ‘명예살인’의 여러 사례를 보면서 파키스탄의 사회적인 분위기와 규범이 여성의 사랑할 자유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자. 1) ‘명예살인’이란? 명예살인이란 종교 일반 이슬람 문화를 따르지 않거나, 가족, 부족 따위의 공동체의 명예를 더럽힌 자를 살해하는 관습을 말한다. 주로 순결이나 정조를 잃은 여성이 그 대상이다. 흔히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아제르바이잔 및 서아시아, 아프리카에서 행해지고 있다. 유엔인구기금(UNFPA)은 전 세계적으로 연간 많게는 5000명이 명예살인으로 희생되는 것으로 추정할 만큼 그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 대부분 사람들은 명예살인이 종교와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가해자들이 종교를 핑계 삼아 자신의 살인을 정당화하지만, 여성의 인권을 유린하는 모든 구습은 종교의 의무성에 기인하지 않는다. 코란은 “남녀 모두 알라의 피조물이며 동등한 가치와 존엄을 가진 존재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코란은 남성과 여성의 해야 할 역할이 서로 다르다고 강조한다. 남성은 가족을 지키고 경제적인 삶을 책임져야 하는 반면, 여성은 가족을 부양하고 자녀들을 양육하는 것을 미덕으로 권장한다. 이러한 가르침을 남성들은 자기 입맛에 맞추어 살인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2) 파키스탄 ‘명예살인’의 사례 2014년 5월 27일 파키스탄에서 한 여성이 사랑하는 남성과 결혼했다는 이유로 법원 앞에서 가족들이 던지는 돌맹이 등에 맞아 죽었다고 경찰과 변호사가 말했다. 죽은 여성의 부모는 “부모가 정해주는 결혼이 보수적인 파키스탄 사람들 사이에서는 상식이며 연애결혼은 범죄적 위반으로 여겨지고 있다.”라고 말하며 무죄를 주장했다. 이렇듯 집안이나 공동체가 정해준 짝이 아니거나 공동체 바깥의 남성과 정을 나눴을 때 여성들은 가혹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나아가 아랍 이슬람 국가는 계급이 나눠 있는데, 낮은 계급 사람과의 사랑 또한 집안의 명예를 더럽혔다며 살인한다. 당시 파키스탄은 명예살인의 경우 가족이 용서하면 처벌하지 않는다는 예외 법규가 있어서 대다수 가해자가 면죄부를 받았었다. 이에 여성들은 사랑할 자유는커녕 그들의 목숨을 지키는 것조차 어려웠었는데, 몇몇 여성들은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 감옥에 들어가는 것이 더 낫다고 말할 정도였다. 파키스탄의 명예살인 발생 수는 연평균 1000건으로, 전문가들은 이는 빙산의 일각이며 다수의 범죄가 집계조차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명예살인 근절이라는 내용으로 많은 캠페인과 인권 운동이 이루어지면서 명예살인의 심각성이 부각되었다. 이에 파키스탄 정부는 “명예라는 이름으로 벌어지는 비인간적이고 잔인한 행위를 막기 위한 법안을 마련할 필요성을 느낀다.”라며 2016년 10월 6일 의회에서 ‘처벌불원’ 조항을 폐지하고, 최대 25년형을 선고하는 보다 강력한 처벌을 도입하기로 발표했다. 처벌이 강화된 명예살인 금지법으로 명예살인 건수가 줄어들었다.(2018년 확인된 명예살인 건수: 209명) 하지만 아직까지도 공동체 내에서 명예살인을 한 자를 영웅으로 취급하는 등 그릇된 인식을 바꾸지는 못하고 있다고 한다. Ⅲ. 마무리 명예살인은 한때 이슈화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지만, 지금은 그 관심이 해이해졌다. 하지만 아랍 이슬람권 여성들은 자신들의 인권을 위해 여전히 싸우고 있다. 우리가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 이유는 그들의 아픔이 크게 공감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현재 여성에 대한 위치와 역할에 대한 인식이 많이 개선되었고, 따라서 여성이 살기에 충분히 살기 좋은 나라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우리나라도 꽤 최근인 1997년에 MBC의 한 택시기사에게 성폭행 당한 여대생이 자살했다는 보도에서 기자는 “수치스러운 삶 대신 죽음을 택한 이양의 선택은 정조 관념이 희박해진 요즘 세태에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라는 발언을 했다면 믿겨지는가? 물론 당시 이 발언에 대한 항의가 있었지만 이러한 생각에 동조하는 사람들 또한 있었고, 2010년대에 이르러서도 몇몇 존재한다는 것은 틀림없다. 여성 혐오가 대표적인 예라고 생각한다. 아직 여성의 위치 바로 세우기는 끝나지 않았다. 여성의 아픔을 잘 아는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여성’일 것이다. 따라서 우리 모두가 변혁자의 한사람으로서 타국의 여성의 자유에 대해 무관심이 아닌 관심으로 대해야 할 것이다. 뉴스([SOCIETY] “혼인신고? 일단은 살아보고 할래요”, 주간동아, 2010.11.01.) https://weekly.donga.com/List/3/all/11/90899/1 학술(“사랑과 자유”, 서배식, 1998년) https://academic.naver.com/article.naver?doc_id=54877454 명예살인의 사전적 의미 https://ko.dict.naver.com/#/entry/koko/0fed7fec9c5b40a78d27fc881a61ae69 학술(“이슬람 여성의 몸과 섹슈얼리티 -민족주의와의 연관성을 중심으로-”, 오은경, 2007년)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1053699 뉴스(“파키스탄 의회, '명예살인' 강력처벌 법안 통과”, 뉴시스, 2016-10-07) https://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61007_0014433769&cID=10101&pID=10100 뉴스(“파키스탄 여성, 가족이 반대하는 결혼으로 남편과 함께 대낮에 투석 살해당해”, 뉴시스, 2019-08-21) https://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40527_0012945877&cID=10102&pID=10100 뉴스(“Killing for honour”, The News, 2019-11-30) https://www.thenews.com.pk/print/576335-killing-for-honour 뉴스(“성폭행사건에 언론은 늘 여성의 이름을 붙인다.”, 미디어오늘, 2016.06.04.)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mod=news&act=articleView&idxno=130282 1) [SOCIETY] “혼인신고? 일단은 살아보고 할래요”, 주간동아, 2010.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