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전근대에 일본의 역사적 흔적
- 최초 등록일
- 2016.10.18
- 최종 저작일
- 20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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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반도의 전근대에는 왜구의 약탈, 청나라, 일본 등의 한반도를 차지하려는 내정 간섭 등으로 많은 시련을 겪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 역사적인 아픔을 묵묵히 조용하게 사실을 전하고 있는 사적지와 유물들이 전국 각지에 보존되어 있다. 그 중에서 전근대(1910년 이전)에 일본과 관련된 사적지와 유물의 찾아보고 그것에 담긴 역사적 사실을 살펴보고자 한다.
목차
I. 서론
II. 본론
1. 광주광역시 월계동 장고분
2. 광주 시립민속박물관에서 본 정지 장군의 갑옷
3. 서울우정총국
4. 민씨 정권의 최후, 경복궁의 건청궁
5. 을사조약이 체결된 중명전
III. 결론
IV. 참고문헌
본문내용
I. 서론
한반도의 전근대에는 왜구의 약탈, 청나라, 일본 등의 한반도를 차지하려는 내정 간섭 등으로 많은 시련을 겪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 역사적인 아픔을 묵묵히 조용하게 사실을 전하고 있는 사적지와 유물들이 전국 각지에 보존되어 있다. 그 중에서 전근대(1910년 이전)에 일본과 관련된 사적지와 유물의 찾아보고 그것에 담긴 역사적 사실을 살펴보고자 한다.
II. 본론
1. 광주광역시 월계동 장고분
소재지 : 광주광역시 광산구 월계동 748-2번지
사람의 발길이 뜸한 곳. 입구에서 볼 때 그리 크지 않은 규모의 고분이었다. 안내문 앞에서 볼 때는 그냥 고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옆으로 걸어 갈수록 웅장함에 감동하고 흥분하고 있었다.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또 하나의 작은 고분을 보면서 이 시기에 전방후원분이 활성화되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한다.
장고분(長鼓墳)은 삼국시대의 고분으로 1994년 2월에 기념물 제20호로 지정되었다. 이 무덤의 생김새는 장고 모양과 닮아서 장고분이라 하며, 2개의 장고분은 일본의 전방후원분과 닮았다.
전방후원분은 3~6세기 일본의 지배층에서 유행하던 무덤양식이다. 앞은 사각의 제단이 있는 봉분과 뒤편으로 시신을 안치하는 석실로 둥근 봉분이 붙어 있다. 1990년대부터 1995년에 이르기까지 발굴한 결과, 5~6세기의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시신을 안치하는 석실 위에 봉분을 쌓고 주변에 도랑을 팠다. 이 도랑을 주호라고 한다.
원래 이곳에는 9개의 장고분이 있었지만, 봉분을 깎아서 논밭으로 만들어 없어지고 현재와 같이 2개의 장고분이 남아있다. 일본강점기에 도굴되어 금귀고리, 원통형 토기 파편, 쇠 화살촉 등 몇 점만 발굴되었다. 이 고분은 한국전쟁 때에 사람들의 피난처가 되기도 하고, 여름에는 쉼터와 농산물을 보관하여 두기도 하였다.
5~6세기 한반도는 옹관묘가 성행하였다. 장고분을 포함하여 영산강 일대에 14개의 고분이 발견되었는데 특히, 이 지역의 전방후원분은 일본의 북규슈 및 아리아께(有明)해 연안 지역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한다
참고 자료
고려 시기의 광주-왜구에 대한 방어, http://news.gangju.go.kr, 2012
문화재정보, 네이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네이버
이근우,이영, 김동철 공저(2014), 전근대 한일관계사, 한국방송통신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