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남장로교회역사 및 선교 발표
- 최초 등록일
- 2016.05.12
- 최종 저작일
- 2015.05
- 5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2,000원
목차
1. 미국 남 장로교의 역사
2.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 파송과 선교전략
1) 미국 남장로교의 선교사 파송
2) 선교전략
본문내용
1. 미국 남 장로교의 역사
첫 번째 장로회 총회( First General Assambly)
정치인들이 미합중국의 헌법을 준비하고 있는 동안에 교회는 미국에 있는 모든 장로교회를 포함시킬 수 있는 총회의 조직을 계획하고 있었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 1788년에 미국 장로교총회(the General Assembly of the Presbyterian Church in America)가 조직되고, 뉴욕과 필라델피아 대회는 1788년 5월에 모두 16개의 노회를 4개의 대회로 나누었다. 그리고 1789년 5월 21일 필라델피아에서 “미합중국 장로교회 총회”(General Assambly of Presbyterian Church in the United Statess of America)라는 이름으로 열렸다.
영적 각성운동과 장로교 분열
과거 미국의 1차 영적 각성 부흥 운동은 1740~1750년대에 일어났었고, 1798년부터 1801년 사이에 다른 부홍 운동이 일어나서 곧 전국에 퍼졌는데 이는 제2차 영적 각성 부흥운동이라 부른다. 1800년에는 수십년전까지만 해도 16개의 노회였던 것이 26개의 노회가 되었고, 1789년 첫 번째 총회가 열렸을 당시는 419개 교회였던 것이, 1803년에는 511개 교회가 되었다.
미국이 성장하고 19세기 초반기에 많은 사람들이 서부로 이동하자, 장로교회는 미국 개척자들 가운데 새로운 교회를 설립하기 위해 회중교회 교도(Congregationalists)들과 협동 플랜을 세우고 관련을 맺었다. 그러나 연합 플랜에 대한 혐의(정통과 경건을 침식시킨다고 봄)와 하버드 대학과 같은 교육기관에서 신학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인식에 근거하여, 장로교도들 사이에서 다른 내적 분쟁이 있었는데, 이 분쟁은 1837년에 연합 플랜에 반대하는 ‘구학파’(Old School)와 연합 플랜을 지지하는 ‘신학파’(New School) 사이의 분열로 발전했다. 이렇게 해서 교회정치 문제와 교리문제로 인해 구학파와 신학파로 나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