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후기 원나라 교류에 의한 문화적 교류
- 최초 등록일
- 2015.05.09
- 최종 저작일
- 20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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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론
2. 몽고풍의 정의
1) 관복
2) 복식
3) 머리장식
4) 머리형태-변발
5) 머리형태-아환계
6) 결혼제도의 변화 및 공녀제도
7) 음식문화
3. 결론
본문내용
1. 서론
고려는 1231년(고종 18)부터 몽골의 침략을 받아 약 30년 동안 항전을 벌인 뒤 1259년(고종 46)에 강화를 맺었고, 그로부터 1356년(공민왕 5) 공민왕의 반원운동이 성공할 때까지 원의 간섭을 받았다.
원 간섭기에 고려는 왕조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원의 간섭을 받게 되어 자주성이 크게 훼손되었다. 우선, 고려 영토 안에 쌍성총관부, 동녕부, 탐라총관부 등 원의 지방관청이 설치됨으로써 영토의 일부를 상실했다. 이 가운데 동녕부와 탐라총관부는 고려의 요구에 따라 이른 시기에 반환되었으나 쌍성총관부는 1356년 무력으로 수복할 때까지 약 100년 동안 원의 영토가 되었다. 원나라의 내정간섭이 시작되고 부마국으로서 고려의 왕세자가 몽고로 가서 공주와 결혼해서 오는 시기부터 본격적인 문화교류가 시작된다.
2. 몽고풍의 정의
원 간섭기에는 고려 국왕의 계승이 원에 의해 결정되었다. 그 때문에 고려 국왕이 원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국왕이 재위 중에 원에 의해 퇴위 당하거나, 퇴위했던 국왕이 복위하는 일도 여러 차례 일어났다. 원의 간섭에 따라 고려의 정치제도가 3성-6부 체제에서 첨의부-4사 체제로 격하되었으며, 왕실에서 사용하는 용어도 격하되는 등 고려 전기 이래의 황제국 체제가 부정되고 제후국 체제가 정착되었다. 또한 원의 여러 전쟁에 필요한 군대와 각종 물자를 제공하게 되었으며, 공물과 공녀·엄인(閹人: 고자) 등을 원에 보내게 됨으로써 일반 민들이 커다란 피해를 입었다.
고려 후기에는 원과의 교류가 활발해짐에 따라 몽고의 여러 가지 풍속이 고려에 들어와 유행하였는데, 이를 몽고풍이라 하였다. 몽고의 풍속은 주로 왕실이나 귀족, 관리 등 상류층을 중심으로 유행하였고, 그 일부는 민간에까지 파급되어 우리 풍속에 영향을 주었다.
몽고풍은 지금까지도 우리 일상에 뿌리 깊게 전해 내려오는데 본격적으로 원나라와의 잦은 왕래로 전해진 고려 시대의 문화 변화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1) 관복
고려와 원은 정치적인 교류에 의해서 변화가 나타났는데, 원이 고려를 지배하였기 때문에 강압적인 사여에 의하여 관복을 착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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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지식백과] 공녀 [貢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