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고구려비의 연구현황과 쟁점
- 최초 등록일
- 2014.08.16
- 최종 저작일
- 20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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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2013년도 새로이 발견된 집안고구려비에 대한 설명, 해석 및 약간의 내용분석을 포함하고 있다.
목차
Ⅰ머리말
Ⅱ 비문의 내용과 광개토왕릉비
1. 비문의 판독 및 내용
2. 광개토왕릉비와의 관계
Ⅲ 입비시기
1. 광개토왕설
2. 장수왕설
Ⅳ 비문의 성격
1. 수묘비로서의 성격
2. 율령비로서의 성격
Ⅴ맺음말
본문내용
2013년, ‘새로운 광개토대왕릉비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국내에 전해졌다. 이 소식은 학계는 물론이거니와, 일반인들의 주목까지 받았다. 중국 길림성 집안(集安)에서 광개토대왕이 세웠을지도 모르는 고구려비가 발견된 것이다. 이 비석을 일컬어 ‘集安 고구려비’라 한다.
2012년 7월, 마소빈이라는 현지민이 지안시 서쪽, 마센하(麻線河) 다리의 하천바닥 밑에서 최초로, 이 비석을 발견하였다. 마센하는 라오링산맥 남쪽 비탈에서 발원하여. 마센 골짜기 분지를 경유, 압록강으로 유입된다. 마센골짜기 분지에는 천 개나 되는 고구려 무덤이 분포하여, 고구려 무덤이 집중되어 있는 구역의 하나라고 한다.
<중 략>
이성제는 자신의 논문에서, “광개토왕이 비를 세운 목적이 王陵修复과 墓上立碑 등의 정비를 통해 본격적인 왕릉수묘제가 시행된다는 사실을 선포하는데 있었다.”고 주장한다. 이성제, 2013, 「집안 고구려비로 본 수묘제」 『한국고대사연구』 70, pp.181-218.
비문을 구성하고 있는 주요 내용은 宗廟 등 국가적 제례의 정비에 후속하여 광개토왕이 수묘제를 시행하게 되었음을 알리는 것으로 특정 왕릉의 수묘비에 기재될 내용이 아니라는 것이다.
‘□罡上太王’을 포함한 세 사람의 왕호가 등장하고 있는 부분은 이 비의 독자적 측면을 가장 잘 보여준다. 세 사람의 왕호를 연칭한 것은 수묘제와 관련된 일련의 사업이 이들 3왕의 시대를 통해 추진되었음을 강조하고 있는 필법으로 여겨진다. 3왕 가운데 두 사람은 왕호의 내용으로 보아 故國原王과 広開土王임을 알 수 있으며, 이들과 시대적 상황을 공유했다는 점에서 나머지 한 사람은 美川王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종묘제의 정비는 역대 국왕의 신위를 종묘에 안치하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시조로부터 현재의 국왕까지 이어지는 왕실 계보의 정리가 수반되었다고 보아야 하는 것이다.
참고 자료
김수태, 2013, 「집안고구려비에 보이는 율령제」 『한국고대사연구』 72.
이성제, 2013, 「집안 고구려비로 본 수묘제」 『한국고대사연구』 70.
홍승우, 2013, 「집안고구려비에 나타난 고구려 율령의 형식과 수묘제」 『한국고대사연구』 72.
강진원, 2013, 「신발견 〈고구려비〉의 판독과 연구현황」 약간의 견해를 덧붙여, 『목간과문자』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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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규, 2013, 「신발견 고구려비의 구성과 내용고찰」 『한국고대사연구』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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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숙, 2013, 「集安高句麗碑의 건립시기와 성격」 『한국고대사연구』 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