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길준 서유견문
- 최초 등록일
- 2012.12.17
- 최종 저작일
- 20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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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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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서유견문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쓰여진 서양에 대한 입문서이며 동시에 근대화의 방향을 제시한 계몽서라고 할 수 있다. 서유견문에는 엄청난 양의 서양에 대한 지식이 담겨져 있는데, 그는 그것이 자신의 경험과 지시에 의존해서 쓰지않았음을 밝히고 있다. 특히나 후쿠자와 유기치의 西洋事情에서 많은 부분을 복사 인용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가 가장 중점을 둔 소재는 "개화의 등급"이다. 유길준은 이 책에서 자신의 개화에 대한 사상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서문․비고와 20편의 본문으로 이뤄진 서유견문은 세계 지리와 서양의 대도시 소개, 서양의 정치․경제 체제, 사회․학문․과학 분야 등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당시 조선 사회에 서양의 앞선 문물(서기․西器)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인식이 상당히 퍼져 있었던 점을 고려한다면, 이 책의 핵심은 서양의 정치․경제 체제(서도․西道)를 깊이 검토한 부분에 있다고 할 것이다. 서유견문은 유길준의 스승인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의 서양사정(西洋事情․1866~1870)을 본뜬 것이다. 후쿠자와가 미국과 유럽 여행 경험을 바탕으로 서양 문물을 일본에 소개하기 위해 간행한 이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어 일본 근대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1881년 1월 신사유람단의 수행원으로 일본에 갔던 유길준은 후쿠자와가 세운 게이오의숙(慶應義塾)에 입학하여 이듬해 말 임오군란으로 귀국할 때까지 그의 가르침을 받았다. 그는 서양사정의 성공을 보았고, 그때부터 같은 종류의 책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10년 만에 완성한 이 책은 간행하기까지 5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1895년 4월 일본 도쿄에서 1000부가 비매품으로 간행됐지만, 그나마 이듬해 2월 아관파천이 일어나 유길준이 일본으로 망명하는 바람에 제대로 보급되지 못했다. 서양사정과 서유견문의 차이는 19세기 후반 일본과 한국의 근대화 성공과 실패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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