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과] 장개석과 모택동
- 최초 등록일
- 2002.11.21
- 최종 저작일
- 20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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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모택동과 장개석을 비교한 레포트 입니다.
많은 도움이 될거예요..
목차
*서론
*본론
1. 성장기
2. 시대배경
3. 공산당의 창립과 국민당의 결성
4. 중국 공산당의 성장과 국민당과의 대립
5. 대장정 시기
6. 항일전쟁
7. 국공내전
8. 장개석이 패한이유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장개석이 공산당 군에 비해, 몇 배나 많은 병력, 월등한 재정기반, 거기에 미국의 막대한 군사지원까지 받았음에도 결국 민심을 잃었기 때문에 모택동에게 패하고 말았다. "민심을 얻어야 천하를 얻는다" 라는 말을 절실히 깨달았다. 덕을 많이 쌓은 사람은 존경을 받는다. 하지만 덕을 많이 쌓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끊임없이 자기 절제와 양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덕(德) 득(得)과 심(心)이 합쳐진 글자이다. 따라서 덕을 쌓은 사람이란 바로 다른 사람이 마음을 얻은 사람을 뜻한다. 평범한 개인이든, 나라를 경영하는 정치인이든, 덕을 쌓지 않고는 되는 일이 없다. 대만으로 물러선 장개석 정부는 대륙회복을 입버릇처럼 외치면서 밑바닥 상황에서 출발하여 대만 건설에 매진하며, 일찌감치 자본주의의 노선을 걸었다. 일본 제국주의 시절 농업기반으로 자급자족 체제를 마련했다. 대만은 장개석의 고압정치로 정치적인 자유는 상당부분 유보되었지만, 중소기업 위주의 경제정책으로 아시아의 4대 신흥 공업구 중에서도 비교적 튼실한 경제 구조를 갖추었으며 90년대 들어 컴퓨터 산업과 고급 과학기술에 발굴의 성과를 거둬 아시아 금융위기에서도 큰 피해를 보지 않았다. 모택동은 농촌 개조운동은 나름대로 성공을 거두어 새로운 계기를 마련했지만 공업수준이 절대적으로 빈약한 상황에서의 진일보 발전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