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기에 앞서 사마천이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서 알아 볼 필요성을 느꼈다. 역사가의 사관에 따라서 얼마든지 역사적 사실이 다르게 포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마천의 선조는 대대로 태사(사관)였고, 부친 사마담은 한 무제 즉위 후 30년 동안 태사직에 있었다. 사마담은 학문에 밝았으며 천문에 능통하였기에 어린 사마천은 좋은 교육을 받고 자랐다. 사마천에 대한 교육은 학문에 조예가 깊었던 부친 사마담의 영향이 컸다. 사마담은 병을 얻어 죽고 말았는데, 임종 시 아들에게 자신이 시작한 <사기>를 끝마치도록 유언하였다. 사마담이 <사기>편찬에 끼친 영향은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그는 편찬 체계를 확립하고 필요한 자료를 수집하였으며 부분적인 기록을 시작한 사람이다. 사마천은 그 유지를 받들어, 무제 원봉 3년인 기원전 108년에 태사령이 되면서 자료 수집에 착수하였다. 그 후 기원전 104년 42세 때 <사기>를 저술하기 시작했으나, 흉노와의 전투에서 부득이 투항하지 않을 수 없었던 벗 이릉 장군을 변호하다 무제의 미움을 사, 기원전 99년 남자로서 가장 치욕스러운 궁형에 처해진다. 사마천이 죽음을 택하지 않고 이런 모욕을 견딘 것은 부친의 유언 때문이었다. 그의 처절한 울분은 냉철한 역사가로서의 눈을 뜨게 해주었다. 사마천은 옥중에서도 치욕을 보상받겠다는 일념으로 저술을 계속하였으며, 기원전 95년 황제의 신임을 회복하여 환관의 최고 직인 중서령이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기원전 90년에 <사기>를 완성하였다. 실로 20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이 <사기>의 완성에 바쳐진 것이다. 총 130편, 모두 52만 6000여 자라는 방대한 양을 통해 전설시대인 황제 때부터 한나라의 무제까지의 역사를 기록한 <사기>는 이렇게 탄생되었다. 사마천이 기록한 이 <사기>는 기전체 방식이다. 즉 연대기가 아니라 인물이나 사건별로 기술하였다. 사마천은 무제의 심기를 건드려 처형당한 것으로 보이는데, 사망한 연도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 역사가로서 <사기>의 완성을 위해 힘을 쏟았지만 정작 자신에 대해서는 기록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기>를 읽으면서 왜 사람들이 <사기>읽는 가에 대해서, 왜 이 책을 추천하는 가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학자들이야 연구 목적의 성격이 강해서 읽겠지만, 일반 독자나 청소년들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사기를>읽는 묘미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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