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내전-유럽의 정치(1914-1945)
- 최초 등록일
- 2010.11.12
- 최종 저작일
- 20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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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1914년 부터 1945년 까지 일어난 큰 전쟁들에 대한 내용이다.
목차
<서론>
<제1차세계대전>
<전쟁과 혁명>
<상처받은 평화>
<이탈리아 파시즘>
<바이마르 공화국의 몰락>
<로마-베를린축>
<스페인 내전>
<제2차세계대전>
<결론>
본문내용
비스마르크의 승리로부터 1914년 전쟁이 일어날 때까지의 오랜 평화 기간은 경제적 진보와 기술적 진보에 대한 낙관적 신념을 지닌 시기였다. 독일의 지배계급은 산업화, 도시화, 그리고 강력한 사회주의 운동의 출현이 야기한 국내문제를 ‘부정적통합’으로 알려진 과정으로 처리하기로 선택했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독일의 지배계급이 국내의 도전들을 조정하기 보다는 외부의 적이라는 유령들에 대항하기 위해 국민을 통합하여 그것들을 가라앉히거나 혹은 사실상 방출하기로 선택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불안정한 냄비의 한 가운데 두 종류의 국가가 존재했다. 하나는 충분히 유연하고 대중적 압력에 개방되어 있으며 다소 민주적이며 식민제국이라는 안전밸브를 지닌 영국이나 프랑스 같은 국가들이었다. 나머지는 상당히 불안정한 사회를 어렵게 다스리는 경직되고 권위주의적 체계를 지닌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이탈리아, 러시아, 스페인 같은 국가들이었다.
<제1차세계대전>
당시의 큰 문제들이었던 사회갈등과 민족주의를 잠재우기 위해 일으킨 전쟁이 그것들을 헝클어놓아 통제불능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은 잔인한 아이러니였다. 다른 국가들의 부를 약탈함으로써 국가의 부의 재분배에 관한 사회주의들의 요구를 시대에 뒤지게 만들자는 것이 독일의 전쟁목표였다. 연합군이 단호히 보수적 방식으로 남아있는 동안 독일군은 끊임없이 야만적 혁신물 들을 만들어냈다. 1915년 4월 이프르에서 염소가스가 사용되었다. 화염방사기, 독가스, 비행기 사용 등의 더 나은 기술적 혁신물에도 불구하고 독일군은 34만명 정도가 희생된 채 베르덩에 묶여 있었다. 결국 운명적으로 독일군은 배가 나타나면 침몰시키겠다는 원칙하에 상선에 대한 잠수함 공격으로 영국 무역을 파괴하기로 하였다. 1915년 영국의 정기여객선 루시타니아 호가 침몰되어 128명의 미국인을 포함한 천 여명의 사망자를 낳자 윌슨 대통령의 고립주의는 흔들렸고, 미국은 전쟁에 좀 더 가까이 다가섰다. 1917년 1월 독일군 사령부는 영국 근해지역의 모든 배에 대해서 무제한적인 잠수함전을 시행하기로 결정했다. 이것은 이른바 짐머만 전보가 가로채임과 동시에 발생했고 1917년 4월 미국은 독일에 대해 전쟁을 선포했다. 레닌은 브레스트-리토프스크에서 별도로 평화조약을 맺었다. 조약에 의해 독일은 동유럽에서의 전쟁목표를 달성했으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핀란드를 포함하는 유럽영토의 25%, 인구의 30%, 석탄 및 철 자원의 50%, 산업의 30%를 잃었다. 1918년 세 번의 걸친 공격으로 독일은 영국군과 프랑스군을 몰아냈으며 사상사 수가 엄청났음에도 영국군과 프랑스 군은 미군이 참전할때까지 공격을 막아냈다. 그리하여 그들은 점차 독일을 몰아내기 시작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