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이름은빨강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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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소설은 처음인데, 심지어 1591년 오스만 제국의 이스탄불이 배경이고 터키의 전통 세밀화가 제일 중요한 소재다. 터키 문화와 그 세밀화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 보니 상상력으로 소설을 따라가기가 쉽지는 않다. 게다가 저자는 모든 등장 인물을 비롯해 개, 나무, 금화 그리고 색깔의 입으로까지 말 하게 하는 실험적인 서사 기법을 보여준다. 오르한 파묵은 정말 이야기꾼이다.



그럼에도 이 소설은 추리소설의 형식을 갖고 있어 흡입력이 보통이 아니다. 나도 푹 빠져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술탄의 화원에서 세밀화를 그리는 금박 세공사가 살해당하고, 마침 12년 동안 고향을 떠났다가 다시 옛사랑을 잊지 못해 돌아온 `카라`가 우연히 사건에 휘말려 탐정 역할을 한다. 용의자는 서로 실력을 다투는 동료 세밀화가 세 명.



그러나 이 이야기는 단순한 범죄극 이상이다. 터키의 세밀화가들에게 조금씩 알려지며 예술의 틀과 가치관을 송두리째 흔든 베네치아의 `원근법`이 한 축에 있다. 원근법은 인간의 시점으로 사물을 보는 것이다. 그 시점이 투영되면 신이 더 이상 그림의 중심에 위치할 수가 없다. 세밀화가들은 전통을 수호하고 원근법을 거부하는 이들과 새로운 예술에 대한 목마름으로 원근법을 받아들이려는 이들로 분열되고 갈등한다. 살인의 이면을 채우는 동기다.



따라서 이 소설은 살인사건과 로맨스를 한 켠에 두지만 다른 한 켠에서는 문명과 문명이 충돌하고 낡은 문명이 붕괴해 가는 대격변을 그려낸다. 총과 대포가 아니라 정교하기 짝이 없는 세밀화가들의 붓 끝에서 신들의 황혼이 불타오르는 것이다.

책을 다 읽고 터키 세밀화를 찾아 보았는데 실물을 보지 못했는데도 참으로 섬세하고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원근법 이전, 신과 전통에 충실한 터키의 미다. 아래는 책에도 여러 번 등장하는 유명한 사랑 이야기 <휘스레브와 쉬린>이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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