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애가 물동이의 물을 한 방울도 안 엎지르고 걸어왔을 때

소개

미당 서정주의 <그 애가 물동이의 물을 한 방울도 안 엎지르고 걸어왔을 때> 감상문

목차

없음

본문내용

시를 읽고 나서 나도 모르게 빙그레 입가에 번지는 미소를 막을 수 없었다. 제목부터 장황한 것이 이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가 싶어서 찬찬히 시를 읽어보았더니, 점점 흥미로워지는 상황에 조금은 간질간질한 기분이 들게 하다가, 끝에 가서는 동심이란 이런 것이라고 보여주는 듯한 마무리... 한 편의 옛날이야기 한 토막을 듣고 난 기분이다. 하지만 이 한 토막으로 모든 걸 알 수 있고 어쩌면 그로 인해 최대의 공감을 이끌어 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읽는 내내 머릿속엔 한 번도 본적 없는 모시밭과 그 옆의 우물가, 그 우물가의 버드나무 한 그루와 밭둑의 민들레꽃들의 생생한 영상이 그려졌고 새침데기 소녀를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더벅머리 소년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였다. 이 시는 몰래 훔쳐보는 소년의 입장과 도도하게 모른 척 하는 소녀의 입장에서 각각 바라볼 수 있겠다.
이 시를 읽고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천진한 소년의 애틋한 마음이었다. 날마다 모시밭 사잇길에서 얼마나 애타는 마음으로 소녀를 바라보았을까. 소년의 생각으로, 소녀가 소년을 보지 않았던 것은 ‘물동이의 물을 한 방울도 안 엎지르고 걸을 수 있을 때’에야 눈을 맞추기로 다짐했기 때문인 것이다. 그렇다, 전부 다 그런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과연 누가 그건 착각이라며 딴지를 걸 수 있단 말인가. 그토록 기다리던 소녀의 눈길을 받았는데, 조물주의 미소보다 더 자애로울 미소를 보았는데 소년에게 있어 그간의 무관심은 지금 이 순간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소년은 아마 소녀의 물이 넘치지 않게 도와준 우물 속 용신께 가슴 속 깊이 감사의 말씀을 드렸을 것이며, 차일부터 모시밭 사잇길의 그 소년이 과연 어떤 마음으로 물동이 아래 순정과 마주했을지 우리는 이 시의 속편을 읽은 것 마냥 짐작해 볼 수 있겠다.

참고자료

·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