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신라 설화전설이에요~
- 최초 등록일
- 2010.06.10
- 최종 저작일
- 20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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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경주 신라 설화전설이에요~
목차
[1] 불국사 창건 신화
[2] 아사달 아사녀 설화
[3]신라 건국 신화
[4] 신라 경순왕의 망국 전설
[5] 작원성
[6]연오랑·세오녀설화
[7] 성부산
[8] 산수유와 신라 48대 경문왕
[9] 처용
[10] 만파식적
[11] 수로부인과 참꽃
[12] 장사 벌지지
[13] 도화문과 비형랑
[14] 논호림
[15] 삼랑사
[16] 천왕사
[17] 원효 이야기
[18] 간묘
[19] 설총
[20] 서출지
[21] 비형의 시
[22] 미추왕과 죽엽군
본문내용
[1] 불국사 창건 신화
모량리(牟梁里)의 가난한 여인 경조(慶祖)에게 아이가 있었는데, 머리가 크고 이마가 평평하여 성(城)과 같았으므로 이름을 대성(大城)이라 하였다. 집이 궁색하여 생활하기조차 어려워 부자 복안(福安)의 집에 가서 품팔이를 하고 그 집에서 준 약간의 밭으로 의식의 자료로 삼았다. 어느날 점개(漸開)라고 하는 스님이 흥륜사(興輪寺)에서 육륜회(六輪會)를 열고자 하여 복안의 집에 와서 시주를 권했다. 복안이 베 50필을 시주하니 점개 스님이 축문을 읽으며 축원하였다.
“신도께서 보시를 좋아하니 천신(天神)께서 항상 지켜주소서. 하나의 보시로 만 배를 얻고 안락하게 장수하소서”.
대성이 이를 듣고 뛰어들어가 그 어머니께 말하였다.
“제가 문 밖에서 스님의 축원하시는 소리를 들으니 하나를 보시하면 만 배를 얻는다고 합니다. 생각컨대 우리가 전생에 선한 일을 못했기에 지금 이렇게 가난한 것이니 지금 또 보시하지 않는다면 내세에는 더욱 가난하게 살 것입니다. 제가 고용살이로 얻은 밭을 법회에 보시하여 훗날의 과보를 도모하면 어떻겠습니까?”
어머니도 옳다고 하여 그 밭을 점개 스님에게 보시하였다. 얼마 뒤 대성이 죽었다. 그날 밤 재상 김문량(金文亮)의 집에 하늘의 외침이
[23] 미추왕과 죽엽군
4대 임금 유리왕때 이서국이 쳐들어와 위태로울 때였다. 그때 어디선가 신기한 병정들이 나타나 신라국을 지원하고 나섰다. 그 신기한 병정들은 모두 댓잎사귀를 귀에 꽂고 있었다. 그들은 신라군과 합하여 적군을 무찌렀다.
적군이 물러가자 그 병정들은 또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다만 미추왕릉앞에 무수한 댓잎사귀가 쌓여있는 것만을 볼 수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미추왕릉을 죽현릉이라 불렀다.
36대왕 혜공왕 15년(A.D 779) 4월 어느날, 김유신 장군의 무덤에서 갑자기 회오리 바람이 일어나더니 `죽현릉` 쪽으로 불어가고 있었다. 그 회오리 바람속에는 늠름한 장군이 준마를 타고 그 뒤를 갑옷을 입고 병기를 든 40여 명이 휩싸여 허공에 떠가고 있었다. 그 바람이 죽현릉에서 사라져 버리자 그 릉속에서 무수한 울음소리가 들렸고 그 내용은 이러했다.
"신은 평생으로 나라를 환난에서 구했고 국토를 통일시킨 공훈을 이루었습니다. 지금 죽어 혼백이 되어도 나라를 굽어 보아 재앙을 물리치고 환난을 구제할려는 마음은 변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지난 경술년 지금의 군신들이 신의 자손을 죄없이 죽였습니다. 이제 지금의 군신들이 이런 나의 공훈을 생각지 않음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제 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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