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대성동고분군, 김해대성동고분박물관
- 최초 등록일
- 2009.04.27
- 최종 저작일
- 20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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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사학과에서 답사가서 발표할 원고를 만든것입니다.
가야고분의 전개과정과 시기별로 대표되는 고분을 설명하였고
김해대성동고분박물관에 대해 설명하였습니다.
목차
1. 들어가는말
2. 가야고분의 전개과정
-목관묘 시기
-목곽묘 시기
-석곽묘 시기
3. 김해대성동고분박물관
본문내용
고고학에서는 일정한 형식을 갖춘 한정된 시대의 지배층의 무덤만을 고분이라 한다. 여기에서 일정한 형식이란 입지조건, 분구의 외형과 규모, 외부시설, 내부구조, 다량의 껴묻거리 이외에 이와 관련된 각종 시설 등을 갖추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고분은 옛날 사람들의 생활․문화․사상․역사를 복원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학문적 자료이다. 대규모의 고분들은 지배계급의 것으로 피장자의 지위나 그가 살았던 시기의 사회상과 시대상, 그리고 당시의 사후세계에 대한 관념 등을 반영해 준다. 이들의 무덤에는 생전에 사용했던 물건들과 순전히 껴묻기 위한 목적으로 제작한 여러 가지 장신구들과 수백 개의 토기들이 묻혀 있다. 심지어는 자신의 시종이나 노예를 강제로 순장시킨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 무덤의 종류나 축조방식에 따라 정치세력의 통치범위를 추정해 낼 수도 있는 것이다.
가야 고분전개 과정은 크게 3시기 정도로 나눌 수 있다. 고분의 위치와 형태는 가야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고분과 고분 안에 부장품들을 통하여 당시의 고구려, 백제, 신라, 왜와의 관계를 볼 수 있으며 당시 주변 국가들에 문화가 뒤지지 않는 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첫 번째 시기는 청동기시대를 포함해 2세기 중·후반까지이며 고분의 형태는 목관묘(木棺墓)이다. 낙동강 유역에는 청동기 및 초기철기시대를 대표하는 지석묘-민무늬토기가 발견되었고 이는 농경사회임을 말해준다. 중국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있는 이 지역은 한반도 다른 지역에 비해 낙후되어 있었다. 그러나 기원전 108년, 위만조선이 중국 한나라 무제(武帝)에 의해 멸망하고 이 전란과정에서 많은 유이민이 발생했다. 이 유이민들은 소국연맹체인 진국과 마한을 피해 문화수준이 낮은 영남 지역으로 들어왔다. 이들의 규모는 알 수 없으나 기원전 1세기 초 이후로 낙동강 유역에는 기존의 지석묘와 다른 목관묘가 여기저기 조성되기 시작했다. 그 내부의 묘제는 목관이었고, 이전시대의 발견되던 민무늬 토기와 함께 고조선 계열의 칠기류와
참고 자료
푸른역사-김태식-미완의문명 7백년 가야사
학연문화사-김세기-고분 자료로 본 대가야 연구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가야고분1,2
경성대 박물관, 2000-2003 <김해대성동고분군1>
김해대성동고분박물관 홈페이지 http://ds.gsiseol.or.kr/
문화재청 홈페이지 http://www.ch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