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가야의 대일 관계사
- 최초 등록일
- 2000.09.12
- 최종 저작일
- 20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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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서론
Ⅱ.임나일본부에 대해
1.임나일본부의 어의
2.임나일본부설
Ⅲ.가야와 왜의 문물교류
1.고대 한국과 일본
2.왜 열도 내의 가야문화 전파
3.가야내의 왜계 유물
Ⅳ.결론
본문내용
Ⅰ. 서론
가야사에 대한 전통적 인식은 ‘신라의 변방사(邊方史)’ 혹은 ‘부족국가사(部族國家史)’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사인 《삼국사기(三國史記)》에 「가야본기(加耶本紀)」가 보이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조선 초기에 여러 관찬사서가 나왔으나, 기존의 사서에 나와 있던 가야관계 사료들이 삼국의 역사 속에 단편적으로 기술되어 있었던 것 뿐이었고, 조선 중기의 사략형(史略型) 및 강목체(綱目體)의 사찬사서들 속에서도 가야의 역사는 그다지 큰 관심을 끌지 못하였다. 사정이 이러하니 가야 연맹의 역사 연구는 그 사료들의 절대적 부족으로 말미암아 아직도 답보상태에 머물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나마 남아있는 사료들 중 가장 많은 자료가 남아있는 《일본서기(日本書紀) 720년 도내리친왕(舍人親王)이 총재관이 되어 그의 책임 아래 편찬된 책. 일본 최초의 관찬사서이다. 천지의 생성 및 일본 건국신화를 담고 있는 신대(神代)에서 시작하여, 지통천황의 사망연도(697)까지의 역사를 편년체로 정리한 통사로, 고사기(古事紀)와 더불어 일본 고대사 연구의 핵심적인 사료이다.
》는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왜곡된 부분이 많기 때문에 한때 학계에서 《일본서기》를 언급하는 것조차 금기시 되었던 적이 있었다. 게다가 일본 사학자들에 의해 행해진 가야사의 연구는 기본적으로 왜(倭)의 가야지배,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 설치에 따른 왜의 한반도 남부 경영을 기초로 한 것 이어서 객관적인 연구 성과를 요구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그러므로 올바른 가야사 복원을 위해서 필요로 하는 것은 가야의 대외 관계사 연구를 통한 직간접적인 방법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가야와 주변나라의 관계정립을 통해 가야의 위상을 살펴보고, 나아가 한국 고대사의 재정립을 도모하는 것이 앞으로의 숙제라 하겠다. 이에 본 글은 가야의 대외관계 중 ‘왜’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하여 임나일본부설과 가야와 왜의 문물교류를 살펴 보고자 한다.
Ⅱ.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에 대해
가야사에 대한 근대 일본학자들의 최초의 접근은 주로 《일본서기》에 나오는 임나관계 한반도 지명에 대한 고증작업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가야관계 지명고증은 가야사연구의 필수적인 작업이었으나, 그들의 연구는 처음부터 ‘왜의 임나지배’라는 선입견에 의해 이루어져 객관적인 연구성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참고 자료
김태식, 《가야연맹사》, 일조각, 1993
한국학 연구소, 《가야사론》, 고려대 출판부, 1993
천관우, 《가야사연구》, 일조각, 1993
국사편찬위, 《한국사 7》, 1997
홍윤기, 《일본 문화사》, 서문당, 1999
가야문화 연구원, 《가야문화 제 10호》, 1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