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의 대왜교역
- 최초 등록일
- 2008.06.23
- 최종 저작일
- 20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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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가야와 왜와의 교역관계를 통해 가야사를 살펴본 논문입니다. 가야에 대한 자료가 없는 현실에서 교역관계를 통해 가야를 알아본다는 것이 임나설이 돌고 있는 가운데 중요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목차
1. 서론
2. 본론
1)3세기 가야의 대왜교역
2)4세기 가야의 대왜교역
3.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1. 서론
삼국과 일본의 관계는 많은 사료들을 통해서 그 내용을 자세히 알 수 있다. 그러나 가야와 일본의 교류에 있어서는 그 교류가 적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절대적으로 부족한 자료로 인해 그 연구 성과가 너무 미비한 상태이다. 그나마 가야에 관해 많은 자료가 남아있는 《일본서기》는 일본학자들의 ‘임나일본부설’의 토대가 되는 것이기도 한데, 이는 왜곡된 부분이 너무 많아 한때 학계에선 이것을 언급하는 것조차가 금기시되기도 하였다. 그래서 본고에서는 가야의 3․4세기 대왜교역을 통해 객관적으로 가야와 일본의 관계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2. 본론
1) 3세기 가야의 대왜교역
낙랑이 설치된 이후 한반도는 낙랑을 중심으로 동북아시아 교역의 중심이 되었다. 이시기의 중국제 물품은 거의 낙랑지역을 왕래하는 상인들에 의해 들어온 것으로 볼 수 있을 정도이다. 이 시기는 낙랑을 중심으로 변한과 왜의 활발한 교역이 이루어지는 시기이기도 했다. 《三國志》위서 동이전 진한조에 “변한국에서는 철이난다. 한․예․왜가 모두 와서 이것을 가져간다. 여러 시장의 매매에는 모두 철이 사용되는데 중국에서 돈을 사용하는 것과 같다.” 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를 통해 진한과역 교역관계를 살펴볼 수 있다. 변한지역의 철기사용 시기는 기원전 2세기로 추정되는데 본격적인 철생산은 이루어지지 못한 시기였다. 그러다가 기원 2세기 중엽에 본격적인 철생산이 시작되는데, 창원 다호리유적과 경주 황성동유적을 통해 알 수 있다. 이로 인해 진한의 대외교역에서 낙동강 하류지역이 부각되었는데, 이시기 이후
참고 자료
강지혜, 3·4세기 가야의 대외교역,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대학원, 2002
김경복 외 1名, 이야기 가야사, 청아출판사, 2003
발창희, 살아이쓴 가야사 이야기, 도서출판 이른아침,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