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과학]5.18 광주민주항쟁
- 최초 등록일
- 2000.09.04
- 최종 저작일
- 20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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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글을 시작하며
5.18 민주항쟁의 배경과 과정
정부측의 입장
광주시민측의 입장
맺음말
본문내용
글을 시작하며
꽃가루가 허공 가득 흩날리는 5월의 길목에 들어서면 매년 `5월, 그날이 다시 오면`이란 노랫말로 시작하는 투쟁가요와 함께 대학가를 포함한 모든 민중의 가슴에 작은 불씨를 피우는 사건하나가 있다.
`5.18 광주항쟁`. 민중의 힘이 무엇인가를 보여준 민중궐기의 대명사인 `5.18광주항쟁`을 재조명하는 일은 우리에게 매우 큰 의미를 갖게 한다. 하지만, 5.18에 숨겨진 진상을 찾는다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가 있다. 사건 중심세력이 아직도 사회 내 지도층에 잔재해 있으며, 향후 오랜 기간 진실은 드러나지 않을 것이다. 이에 우리 조는 광주민중항쟁을 재조명함에 있어 명확치 않은 항쟁발발 원인분석 이론들에 대한 고찰보다는 그러한 거대한 사건을 촉발시킨 정부측과 시민측의 정당성을 중점으로 분석해 보고 나름대로의 결론도출을 시도해 보고자 한다.
5.18 민주항쟁의 배경과 과정
수출주도형 고도성장정책은 70년대 후반 시작된 선진국의 스테그플레이션의 만성화로 인한 세계무역시장의 축소, 보호무역의 강화조치로 한국경제는 궁지로 몰리게 되었고, 이는 한국 경제의 급속한 하강 곡선을 초래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의 유신체제는 재정지원, 금융 특혜, 인위적인 독점가격형성 등으로 독점자본의 이윤 극대화를 조장하였으며, 이런 경제정책은 민중의 사회적 빈곤의 가속화로 귀결된다. 이러한 경제적 배경 속에 79년 박정희는 양당에 대한 탄압을 노골화하고, 기어코 김영삼을 국회에서 제명시키기에 이른다.
정치상황의 급박한 전개 속에서 부마항쟁이 일어나고, 민중투쟁이 고양되는 과정에서 군내부의 강경파와 온건파의 대립은 10월 26일 유신독재체제의 종말을 가져온다. 여기에 전두환은 `하나회`를 중심으로 군내부와 온건파를 제거하는 쿠데타를 감행, 자신의 세력을 강화하여 권력기구들을 장악해 나가는 한편, 유신잔당을 규합하여 정권을 탈취하려 하였다. 18년간의 박정희 군사정권은 붕괴됐으나 최규하의 과도정부 역시 유신체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유신잔당과 군부세력이기에 자유와 민주를 요구했던 재야, 학생 민중들과 대립하게 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