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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춘향가의 중요무형문화재 지정 배경 및 지정자료 <춘향가>(1964)의 성격 (The designation of pansori Chunhyangga as an important intangible cultural asset and the characteristics of (1964) submitted at that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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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등록일 2025.07.16 최종저작일 20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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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춘향가의 중요무형문화재 지정 배경 및 지정자료 &lt;춘향가&gt;(1964)의 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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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지정보

    · 발행기관 : 한국구비문학회
    · 수록지 정보 : 구비문학연구 / 41호 / 103 ~ 144페이지
    · 저자명 : 송미경

    초록

    본 논문에서는 1964년 판소리 춘향가가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된 배경, 그리고 당시 지정자료로 제출된 <춘향가>(1964) 사설 및 음원의 구성, 특징에 대해 고찰하였다.
    판소리 춘향가의 1964년 무형문화재 지정 배경은 다음과 같다. 첫째, 1964년에 판소리라는 예술 종목이 아닌 춘향가라는 단일 작품이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나머지 네 바탕의 순차적인 지정을 염두에 둔 상황에서 그 대표성을 고려해 먼저 선택된 결과이다. 둘째, 판소리 춘향가의 보유자로 김연수, 김여란, 박록주, 정광수, 김소희, 박초월의 6명이 인정된 데에는, 1963년 ‘국악명인합동추모제’ 준비를 위해 작성되었던 판소리 명창 계보가 그 초안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국악명인합동추모제 위원회의 위원장과 부위원장이 박헌봉과 김연수였다는 점도 주목을 요하는데, 박헌봉은 문화재 위원으로 판소리 춘향가의 조사 및 문화재 지정에 관여했으며, 김연수는 지정자료 <춘향가>의 녹음에서 가장 많은 분량의 연창을 맡았다. 한편 6명의 보유자 가운데 정광수는 이 과정에 후발주자로 편입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셋째, 판소리 춘향가의 문화재 지정이 ‘바디’가 아닌 ‘더늠’ 중심으로, 그것도 한 명의 명창이 남긴 더늠을 조합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명창이 각기 남긴 더늠을 조합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것은 박헌봉과 유기룡, 특히 박헌봉의 판소리관에 기인한다. 박헌봉은 좋은 더늠을 추려 취합한 교합본이 “하나의 基準”이 될 수 있다고 믿었고, 그의 판소리관은 1964년 판소리 춘향가의 무형문화재 지정, 1966년 『창악대강』의 발간을 통해 현실화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더늠’ 중심의 판소리 문화재 지정 방식은 성경린 등의 반대에 따라 ‘바디’ 중심으로 완전히 바뀌었고, 후자의 방식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1964년, 중요무형문화재 지정자료로 제출된 <춘향가>는 19개의 더늠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녹음에는 약 4시간 정도가 소요되었다. 소리 대목은 총 75개로, 대부분은 한 명의 명창이 맡아 부르는 형식이었다. 다만 이 가운데 4개 대목은 대화창 또는 부분창으로 불린바, 이렇게 창극과 비슷한 형식을 취한 데는 박헌봉과 김연수의 영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20세기 이후 판소리에 나타난 중요한 변화로 꼽히는 토막소리화, 창극화의 양상은 이처럼 중요무형문화재 지정자료 <춘향가>에서도 발견된다. 그리고 중요무형문화재 지정자료 <춘향가>의 사설은 『(판소리)春香歌』 등에 실려 있고, 예술자료원 소장 음원과 비교해본 결과 창과 아니리의 구분, 장단 표기, 세부 사설 면에서 적지 않은 차이가 있었다.
    중요무형문화재 지정자료 <춘향가>의 녹음에는는 앞서 언급한 6명의 명창이 참여했으며 북 반주는 이정업, 김재선, 김득수가 맡았다. 김연수가 녹음한 부분은 그가 남긴 여타의 춘향가와 대체로 유사했으나 생략 또는 축약이 일부 있었다. 그가 정립한 동초제 춘향가의 연창 시간이 8시간 정도인 데 반해, 무형문화재 지정자료 <춘향가> 녹음이 그 절반에 불과한 4시간여에 걸쳐 이루어진 사실을 고려하면 당연한 것이다. 박록주가 녹음한 부분도 대부분은 그의 여타 춘향가와 비슷했는데, ‘자진사랑가’와 ‘이별가’ 대목에서 과거 대명창들의 더늠을 구현해달라는 문화재관리국의 요구를 수용한 흔적을 찾아볼 수 있었다. ‘자진사랑가’는 그가 송만갑을 통해 익힌 고수관제 더늠을 넣은 것이며, ‘이별가’에 삽입한 “여보 도령님(…)” 사설은 모흥갑제 더늠 ‘이별가’의 일부를 끌어온 것이다. 김소희가 녹음한 부분에서는 정정렬제 ‘오리정 이별’ 후반부에 들어가는 ‘비 맞은 제비 같이’와 ‘하루 가고’가 생략되었는데, 나머지 부분은 그가 남긴 세 본의 춘향가와 다르지 않았다. 김여란이 녹음한 부분도 ‘긴 사랑가’의 뒷부분 사설이 축약된 것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박초월이 녹음한 부분은 대도레코드 <창극 춘향전>과 비교해 창과 아니리의 구성이 조금 다르긴 했지만, 전반적인 사설이나 장단, 선율 면에서 매우 비슷했다. 마지막으로 정광수가 녹음한 부분은 이동백의 더늠을 이은 것으로 보이나 명확한 출처는 찾을 수 없었다.
    현재 여러 창자들에 의해 전판이 연행되고 있는 춘향가 바디는 보성소리 춘향가. 정정렬제 춘향가. 동초제 춘향가, 만정제 춘향가의 넷이다. 이 가운데 보성소리 춘향가를 제외한 나머지 세 바디가 오늘날 전승의 맥을 잇고 있는 것은, 1964년 춘향가의 무형문화재 지정 당시 6명의 보유자에 김연수, 김여란, 김소희가 포함되었던 정황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따라서 1964년 판소리 춘향가의 문화재 지정은 20세기 그리고 21세기 춘향가 전승에까지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영어초록

    This paper is mainly about the background of pansori Chunhyangga’s designation as the Korea’s 5th important intangible cultural asset and the composition and characteristics of <Chunhyangga>(1964) submitted at 1964.
    The background is as follows. First, Chunhyangga was selected preferentially with the rest of the four pansori works’s sequential designation in mind. Second, when six master pansori singers, Kim Yeonsu, Kim Yeoran, Park Rokju, Cheong Gwangsu, Kim Sohui, and Park Chowol, became the holders of important intangible cultural property, the lineage of pansori master singers for the joint memorial ceremony played an important role as a draft. It is noteworthy that the chairman and vice chairman of the committee for the joint memorial ceremony are Park Heonbong and Kim Yeonsu at that time. Park Heonbong was involved in research and designation for a cultural assets of pansori Chunhyangga as a Committee and Kim Yeonsu took a large amount in the recording of the <Chunhyangga> on 1964. And Cheong Gwangsu is likely to have been incorporated later in the list for the holders of the 5th important intangible cultural asset, pansori Chunhyangga. Third, pansori Chunhyangga was designated as an important intangible cultural property, depending on the way that a combination of deoneums left by several master singer. That was because of Park Heonbong and Yoo Giryong, especially Park’s values for pansori. He believed that the collection of good deonums can be ‘one standard’, his thoughts became a reality through the designation of pansori Chunhyangga as an intangible cultural herritage and the publication his work, Changakdaegang. However, that way was changed completely because of opposition from Seong Gyeongrin. Today pansori is designated for body, not for deonum.
    <Chunhyangga> submitted as a data for the designation of important intangible cultural property in 1964 consists of 19 deoneums and 75 sori passages. And its recording took about 4 hours. The reason some sori passages are similar to Changgeuk’s scenes is the role of Park Heonbong and Kim Yeonsu, Changgeuk officials. And <Chunhyangga>’s lyric is different from its recording in many ways. Among the holders of important intangible cultural asset pansori Chunhyangga, Kim Yeonsu recorded the most deoneums and Cheong Gwangsu recorded the least. Lee Jeongeop, Kim Jaeseon, and Kim Deuksu was drummers for that recording.
    Kim Yeonsu’s recording was roughly similar to his other Chunhyangga, except some skip or abbreviation. Considering that his Dongchoje Chunhyangga requires about 8 hours, this is quite understandable. Park Rokju’s recording was also similar to her other works. She accepted part of Go Sugwan’s “A Song of Love by Fast Form” and Mo Heunggap’s “A Song of Farewell” by request of the Office of Cultural Properties. In Kim Sohui’s recording, the latter half of Cheong Jeongryeol’s “Farewell at the Ori Pavilion” was omitted, the rest wasn’t any different from hers. Kim Yeoran’s recording was quite similar to hers, except “A Song of Love by Slow Form”. Park Chowol’s recording was generally like to Daedo Record’s <Changgeuk Chunhyangjeon>. Cheong Gwangsu’s recording was estimated to be learned by Lee Dongbaek, but it was from an unknown source.
    Now, Chunhyangga played by many pansori singers is Boseongsori Chunhyangga, Jeongjeongryeol’s Chunhyangga, Dongchoje Chunhyangga and Manjeongje Chunhyangga. The fact that these Jeongjeongryeol’s Chunhyangga, Dongchoje Chunhyangga and Manjeongje Chunhyangga have been passed down is relevant with the situation Kim Yeonsu, Kim Yeoran, and Kim Sohui were contained within the list of six holders of pansori Chunhyangga. Therefore, the designation of pansori Chunhyangga as the Korea’s 5th important intangible cultural asset gave a significant impact on the transmission of Chunhyangga in 20th century and the 21st century.

    참고자료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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