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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 관련 유적의 분포와 숭모 (Patterns and Reverence of the Sites related to Choi Chi-Won(崔致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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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등록일 2025.07.09 최종저작일 20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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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 관련 유적의 분포와 숭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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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지정보

    · 발행기관 : 고려사학회
    · 수록지 정보 : 韓國史學報 / 63호 / 7 ~ 33페이지
    · 저자명 : 장일규

    초록

    이 글은 전국에 분포하는 최치원 관련 석각, 사우・서원, 유적 등을 시기별・지역별로 정리하고, 그 특징과 의미를 살핀 것이다. 최치원은 존왕적 정치이념을 내세우면서 신라 사회의 개혁을 꾀하였다. 신라가 쇠퇴하면서 그 이념은 구현되지 못하였지만, 고려의 유학지식인에 의해서 전승되어 국가 운영에 도움이 되었다. 때문에 고려는 물론 조선시대에도 그에 대한 평가와 함께 추모 경향이 꾸준히 유지되었다. 자연히 그의 자취는 전국 곳곳에 분포하였다. 최치원의 자취는 석각, 사우나 서원, 관련 유적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주로 지금의 경남, 경북, 전북에 분포하고 있다. 사우・사원과 유적은 대체로 적게는 4곳에서 많게는 8곳에 이를 정도로 큰 차이를 보이지 않지만, 석각은 32곳에 남아 있다. 다만 전북에는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반면, 경남과 경북에 대부분 분포하고 있다. 석각이나 관련 유적은 귀국 후 그의 활동과 관련되어 전승되고 있다. 최치원의 사후에 그를 모시거나 기리기 위해서 건립한 사우와 서원도 전국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모두 24곳의 사우와 서원 가운데 정읍 무성서원, 경주 서악서원, 군산 염의서원・현충단・옥산서원, 진주 남악서원, 김제 벽성서원, 함양 백연서원 등은 최치원 외에 김유신, 설총, 신잠, 고경, 고용현, 이건명, 조태채, 임병찬, 김종직, 김일손, 옥구 先賢 14位 등의 위패를 함께 모시고 있다. 이들 사우와 서원은 전형적인 先賢奉祀의 모습을 띠고 있으므로, 유림들이 건립이나 향사에 적극 관여한 셈이다. 반면에 서산 부성사, 광주 지산재, 울진 아산영당, 서천 도충사, 순창 지산사 등은 최청, 최운한, 최형한, 최익현, 최몽량 등의 후손을 배향하고 있다. 광주 지산재, 대구 문창후영당, 포천 청성사, 하동 운암영당, 청도 학남서원, 울진 아산영당 등은 처음부터 최치원의 영정을 모신 사우로 건립되었다. 안동 용강서원, 군산 문창서원, 대구 문창후영당, 포천 청성사, 하동 운암영당, 창원 두곡서원, 청도 학남서원, 합천 가야서당, 익산 단동사, 영덕 모운사, 대구 대곡영각 등도 최치원만 모시고 있다. 후손을 배향하거나 처음부터, 또는 최치원만 모신 사우・서원의 건립과 향사에는 경주최씨 문중의 영향력이 제법 미쳤다. 최치원의 영정은 현재 19곳에 봉안되어 있다. 그것은 대체로 문인풍의 영정과 신선풍의 영정으로 나뉜다. 문인풍의 영정은 의자에 앉은 상태에서 관복과 관모를 갖추어 입은 모습이 대부분이지만, 深衣에 복건을 쓴 유학자의 모습이나 옷과 요대, 관모가 서로 어울리지 않는 문인의 모습으로도 표현되었다. 신선풍의 영정은 모두 계곡이 있는 깊은 산 속에 앉은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최치원의 영정은 대체로 문인풍이지만, 하동 운암영당의 영정처럼 원래 산신풍의 영정을 문인풍으로 바꾸어 덧칠한 것도 있고, 광주 지산재의 영정처럼 문인풍의 영정에 신선풍이 混淆되기도 하였다. 최치원의 영정은 애초에 신선풍으로 제작되었다가 점차 문인풍으로 변화하였다. 최치원을 모시는 사우와 서원은 고려 말에 정읍 무성서원이 건립된 뒤, 1483년에 재건되었고, 1561년부터 숙종 때까지 경주 서악서원, 함양 백연서원, 안동 용강서원, 군산 염의서원과 문창서원 등이 연이어 건립되었다. 1623년에 서악서원이 사액된 다음, 무성서원과 염의서원이 사액되었다. 성종 때 일어난 최치원에 대한 숭모 분위기는 선조 때 부성사가 위패를 모신 문중 사우로 처음 건립되는 데 영향을 미쳤고, 1737년에 광주 지산재가 건립되면서 영정을 모신 문중 사우와 서원이 점차 전국에 건립되었다. 영정을 모신 문중 사우와 서원은 경기, 경남, 경북, 광주, 대구, 전북, 충남 등 거의 전국에 건립된 반면에 유림이 관여한 서원은 대체로 경남, 경북, 전북에만 분포하며, 전북에만 무성서원, 염의서원, 현충단, 옥산서원, 벽성서원 등 5곳이 자리하고 있다. 전북 일대에 자리한 서원은 무성서원을 중심으로 최치원에 대한 유림의 숭모와 관련되었는데, 이것은 문인풍의 영정이 대체로 호남과 호서 일대의 사우와 서원에 주로 봉안된 것과도 관련된다. 다만 경남, 경북의 경주최씨 문중에서는 경주 서악서원의 사액을 기점으로, 문중 공동체의 발전과 유지를 위해서 영당의 건립을 확대해 나갔다. 이것은 영남 일대의 사우와 서원에서 대체로 신선풍의 영정을 모신 것과도 연관되었다. 특히 영남 일대는 최치원이 자연을 벗삼아 노닐었던 말년의 삶과 연고되었으므로, 다른 지역보다도 신선풍의 영정이나 석각의 전승이 특별히 강조되는 경향으로 나타났다.

    영어초록

    This paper is to organize the data about letters carved on a stone, shrines(祠宇), Seowon(書院), and archaeological ruins related to Choi Chi-won(崔致遠), and analyze their characteristics and meanings. Choi Chi-won’s footprints could be divided into letters on a stone, shrines and Seowon, and other ruins related to this issue; the most number of them could be found in Gyeongsangnam-do, Gyeongsangbuk-do and Jeollabuk-do Province. Stone carvings and ruins, 32 sites in total, are only located in Gyeongsangnam-do and Gyeongsangbuk-do Province, a phenomenon which the stories about his activities were passed down in this region after his return to his homeland.
    Shrines and Seowon enshrined Choi Chi-won are dispersed all over the nation. Among 24 of the shrines and Seowon, there are some enshrined only Choi Chi-Won, or him with his descendents, but others occasionally enshrined him with other ancestral sages such as Kim Yu-Sin(金庾信), Seol Chong(薛聰), or Kim Jong-Jik(金宗直). Although the tradition of the reverence for Choi Chi-Won were developed by the Confucian scholars(儒林), it was influenced by the Choi Family in Gyeongju(慶州) to a certain degree.
    Choi Chi-won’s portraits were currently enshrined at 19 places. His portraits were drawn in images of the scholars(文人) or hermits(神仙; Sinseon), and the most of them were generally painted as scholars. Yet, some of these portraits as hermits were painted over and changed into portraits of scholars, and some of the portraits of the scholar were mixed with the style for portraits of the hermits. From the beginning, his portraits had been drawn in the image of the hermits, and the style of painting his portraits was gradually turned into the drawing him as scholars.
    Shrines and Seowon enshrines Choi Chi-Won started to spread all over the nation after Museong Seowon(武城書院), a shrine built at the end of the Goryeo dynasty, was reestablished during the reign of King Seongjong(成宗) of the Joseon dynasty. They were continuously constructed during the reigns of Kong Myeongjong(明宗) and Sukjong(肅宗) and the trend of the reverence for Choi Chi-won was fueled by the event that the king presented the title(賜額) to Seoak Seowon(西岳書院) during the reign of Injo(仁祖). Seowon that the Confucian scholars were involved with were usually located in Jeollabuk-do Province. This fact is connected to the phenomenon that the portraits in the image of the scholar were mainly enshrined in shrines and Seowons in this region. On the other hand, while increasing the number of the constructions of shrines promoted by the king’s presentation of the title, Choi Family in Gyeongju mostly enshrined the portraits with the image of the hermits in Gyeongsangnam-do and Gyeongsangbuk-do Province. This region particularly emphasized on the tradition of his portraits and letters carved on stones with the image of the mountain hermits, since the Yeongnam region was strongly related to Choi Chi-Won in his last days living with the nature.

    참고자료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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