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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대 초 일본 측 조선어업 조사 자료에 보이는 독도 (Dokdo which appeared in materials on Joseon fisheries research carried out by Japan in the early 190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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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등록일 2025.07.09 최종저작일 20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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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대 초 일본 측 조선어업 조사 자료에 보이는 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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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독도의 역사적 맥락과 국제법적 해석에 대한 학술적 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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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지정보

    · 발행기관 :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 수록지 정보 : 한국독립운동사연구 / 41호 / 5 ~ 43페이지
    · 저자명 : 윤소영

    초록

    1905년 2월 일본이 독도를 시마네 현에 영토 편제한 근거는 독도가 무인도로 타국이 점령했다고 인정할만한 형적이 없고 1903년부터 나카이 요사부로(中井養三郞)가 이 섬에 이주하여 어업에 종사한 것이 국제법상 점령사실로 인정된다는 것이다.
    이 연구의 목적은 1900년대 초 일본의 조선어업 조사 자료를 통해 당시 독도가 울릉도의 부속 섬으로써 한국 영토로 인식되었다는 사실을 논증하는 것이다.
    1889년 한일통어규칙이 제정된 후 일본은 일본어선의 조선 연해 조업을 장려했다. 1901년 일본에서의 어업법 제정을 전후하여 일본 측은 본격적으로 조선의 수산자원을 파악하기 위한 현지조사를 실시했다. 그 조사보고서에는 울릉도와 독도(양코도)에 대해서도 기록되어 있다. 외국 주재 일본 영사의 보고에 토대한 『통상휘찬』에 수록된 「울릉도사정」(1902)과 대륙침략단체인 흑룡회에서 펴낸 『한해통어지침』(1903), 1904년 제1차 한일의정서 체결 후 한국에 부임한 메카다 다네타로(目賀田種太郞)가 지휘한 한국재정고문본부가 펴낸 『한국 수산행정 및 경제』(1905)에는 일관되게 울릉도 항목에 독도(양코도)를 기술하였다.
    이 자료에 의하면 첫째, 이 무렵 울릉도의 조선인과 일본인은 독도를 「량코도」또는 「양코도」로 불렀다. 조선정부가 울릉도에 개척민을 보낸 것은 공식적으로 1883년부터였고 그 후 일본인도 울릉도에서 와서 계절적인 어로활동에 종사했다. 그래서 일본에서 독도를 부르던 명칭인 ‘량(양)코도’가 울릉도의 조선인 사이에서도 인지되어 통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둘째, 울릉도를 근거지로 하여 독도(양코도)에 4~5일 정도 체류하는 어로활동이 이루어졌다. 처음에는 전복 등을 채취하였으며 1904년경에는 강치어업도 이루어졌다. 비록 이러한 어로활동의 주체가 일본인이었다고 해도 중요한 것은 울릉도를 母島로 하여 독도에서의 조업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셋째, 『한해통어지침』(1903)에는 맑은 날 독도(양코도)가 보인다고 서술하고 있다. 이는 일본의 측이 울릉도에서는 독도가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주장한 것을 논박할 수 있는 자료로서 중요하다. 넷째, 메카다 다네타로가 지휘한 한국재정본부가 펴낸 『한국수산행정 및 경제』(1905)는 효과적으로 조선의 수산자원을 개발·수탈하기 위한 정책제안서인데, 일본 측 관변자료이므로 한국의 독도 영토주권을 입증하는 데에 활용될 수 있는 주요 자료이다.

    영어초록

    The ground that Japan got Dokdo into Shinema Prefecture in Japan in Feburuary, 1905 is as follows; As there was no evidence that Dokdo, an uninhabited island, had been occupied by a foreign country and Nakai Yosaburo moved to this island and engaged himself in fishery from 1903, Japanese occupation of Dokdo is recognized by international laws This study purpose is to prove the fact that Dokdo was recognized as an island attached to Uleungdo by means of materials on Joseon fisheries research carried out by Japan in the early 1900s.
    After the conclusion of the Korea-Japan Fisheries Agreement in 1889, Japan encouraged Japanese fishing boats to fish in the sea along the Korean coast. Japan carried out an on-the-spot investigation to grasp the current status regarding Korean fish stocks in earnest before and after the enactment of fisheries law in Japan in 1901. The investigative reports included materials about Uleungdo and Dokdo (Yangkodo). “The conditions in Uleungdo” (1902) which was included in “通商彙纂 - Collected publication regarding commerce” based on the reports of Japanese consuls in foreign countries, “韓海通漁指針 - Guide to fishing in Sea of Korea” published by “Heukryonghoi - Black dragon society” (1903) and “Korean fisheries administration and economy”(『韓國水産行政及經濟』, 1905) which was published by the headquarters of financial advisors in Korea under the direction of Mekada Danetaro who was assigned to Korea after the conclusion of the first Korea-Japan Protocol in 1904 described Dokdo in the section of Uleungdo consistently.
    First of all, according to these materials, Koreans in Uleungdo and Japanese called Dokdo Ryangkodo or Yangkodo in those days. Joseon government officially sent pioneer settlers to Uleungdo from 1883, and then Japanese came to Uleungdo and they were engaged in fishing seasonally. It is knowable that Ryangkodo (or Yangkodo), that was Dokdo’s name in Japan, was recognized and used by Koreans in Uleungdo. Secondly, they fished near Dokdo staying there for 4~5 days and their base was located in Uleungdo. At first they gathered abalones and then they hunted sea lions in about 1904. Though the main body for such fishing activities was chiefly composed of Japanese, the important fact is that their work was carried out near Dokdo on the basis of Uleungdo, mother island. Thirdly, “韓海通漁指針 - Guide to fishing in Sea of Korea” described that it was possible to see Dokdo from Uleungdo on a fine day. “韓海通漁指針 - Guide to fishing in Sea of Korea” is important as a material to refute the Japanese side claims that it is not possible to see Dokdo from Uleungdo with the naked eye. Fourthly, “Korean fisheries administration and economy” (1905) which was published by the headquarters of financial advisors in Korea under the direction of Mekada Danetaro was a policy proposal to exploit and plunder Korean fish stocks effectively. As it was a material made by Japanese government circles, it can be utilized for proving Korean territorial rights on Dokdo.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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