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글쓰기 2.1 업데이트
PARTNER
검증된 파트너 제휴사 자료

19세기 淸人의 琉救·朝鮮 파견과 영접의례 -鼎元과 柏葰을 중심으로 (Ryukyu Chosun temporary and greeting in the 19th century Choung Person-The Study of Leejeongwon and Baekjun)

20 페이지
기타파일
최초등록일 2025.06.28 최종저작일 2016.08
20P 미리보기
19세기 淸人의 琉救·朝鮮 파견과 영접의례 -鼎元과 柏葰을 중심으로
  • 미리보기

    서지정보

    · 발행기관 : 한국문화융합학회
    · 수록지 정보 : 문화와융합 / 38권 / 4호 / 145 ~ 164페이지
    · 저자명 : 장안영

    초록

    이정원(李鼎元, 1749-1812)은 1800년 유구책봉사의 부사로 정사 조문해(趙文楷, 1761-1808)와 유구를 방문한다. 1800년 부사로 참여한 그의 사행단은 3월 30일 북경을 출발하여 4월 29일 복주성(福州城)을 지나 5월 12일 유구에 도착하고 11월 3일 귀환하는 여정이다. 사절의 규모는 정사, 부사, 통관 등을 포함해 400여 명이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이정원은 유구 사행을 통해 『사유구기』외 2권을 남겼는데 『사유구기』는 총 6권으로, 1802년에 간행되었다. 공식적으로는 책봉사의 의무를 가지고 갔지만 비공식적인 즉 외국의 시문과 풍광에 흥미를 느끼는 기록도 보인다. 이정원의 사절은 복주까지 육로를 이용하고 복주에서부터는 배를 타고 수로를 이용해 유구에 도착한다. 유구를 도착하면서부터 귀국하는 날까지 백관(百官), 법사(法司), 자건관(紫巾官) 등 각 관원들의 영접의례를 끊임없이 받게 된다.
    유구에 도착해 공식 임무인 책봉의 예를 행하는 일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 중국사절은 갈 때는 하지 이후에 서남풍이 부는 것을 기다려 복주를 출발했으며, 올 때는 동지 이후에 동북풍이 부는 것을 기다려 유구를 출발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유구에서 3-4개월 정도 체재하는 일이 대다수였다. 이정원은 5개월 간 유구에 머물렀는데 그 기간에 관리 등의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그는 유구의 문풍(文風), 생활, 고구마, 호랑이 전설 등 다양한 주제로 대화하면서 새로운 사실을 알기도 하며 관심을 가지는 모습이 보였다. 특히 이정원은 유구 사람들이 쓰는 언어나 생활을 옮겨적는 데에 관심을 가졌다. 이러한 관심은 유구 사행 이후 편찬한 『유구역(琉球譯)』이라는 연구서의 결과물로 나타난다.
    한편 백준(柏葰, ?-1859)은 1843년 조선의 왕후가 승하했다는 소식을 듣고 12월 20일에 백준을 정사, 항흥(恒興)을 부사로 임무를 부여한다. 이 사행은 1844년 1월 12일에 북경을 출발하여 2월 7일에 압록강을 건너, 2월 21일에 한양에 입성하여 조문을 한 뒤 사흘만인 2월 24일에 귀국길에 올라 4월1일에 북경에 돌아오는 여정이다. 사행 규모는 정사, 부사, 통관 등 대략 21-22명 정도로 추정된다. 백준은 조선 사행을 통해 『봉사조선역정일기(奉使朝鮮驛程日記)』와 『벽림음관초존(薜箖吟館钞存)』을 남겼다. 『봉사조선역정일기』는 그 해 5월에 출간한 여행일기이며, 『벽림음관초존』은 북경-서울을 오가는 사이에 지었던 시를 모은 것이다. 백준의 사절은 의주에서부터 시작해 정주, 안주, 평양, 황주, 개성 등 여섯 군데에서 원접사(遠接使), 차비관(差備官), 기재관(記載官) 등 조선 관원들의 영접의례를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백준은 3박4일 만에 공식 임무를 마무리하고 귀환한다. 유구와 달리 지리적 조건을 따지지 않고 일수를 필요로 하지 않으므로 곧장 갈 수 있던 것이다. 백준의 사행시를 모은 『벽림음관초존』에 보면 당시 원접사 조병현(趙秉鉉, 1791-1849)과 차비관 이상적(李尙迪, 1804-1865)과의 시 창화 한 내용이 담겨있다. 실제로 조병현과 이상적의 문집에도 백준과 시를 주고받은 내용이 보인다. 공식 활동이 길지 않았던 탓에 조선의 인사와 교분을 쌓거나 종이 또는 부채에 글씨를 써 주는 등의 활동을 할 만한 여유가 생긴 것으로 보인다. 조선으로 가는 사행은 유구보다 더 짧은 시간에 다녀올 수 있었는데, 이는 한쪽이 해로였던 데 비하여 다른 한쪽은 육로로 가능했기 때문이다. 청대 사절에게 있어서 조선은 다소 원거리의 여행이고 유구는 장거리의 여행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나 싶다.

    영어초록

    Leejeongwon(李鼎元, 1749-1812) was Ryukyu as an adverb of a kingdom, 1800 the boss Chomoonhae(趙文楷, 1761-1808) and Ryukyu visit. 1800 his sahaeng is participate on the adverb take off from Beijing and March 30, On April 29, bokjuseong passing through Ryukyu arriving at the May 12 November 3, on its journey home. The scale of the affair, customs clearance, customs procedures, including a mission About 400 people get seems to have to participate. Leejeongwon was through Ryukyu sahaeng 『使琉球記』besides that, wrote two books, 『使琉球記』total 6 volumes Published in 1802. Officially but to go with the obligation of a kingdom, Foreign verses and scenery looks interested in the records or informal. The mission of the Leejeongwon using an overland route to bokju onward bokju by boat by using the canals arrive in Ryukyu. Getting to arrive Ryukyu Until the day gukaneun Baekgwan, Beopsa, Jageongwan etc each a government official welcomed the pledge of allegiance you will be given constant.
    Arrived in Ryukyu official mission take the example of kingdom is not very long work to do. But Chinese delegation at that time wait for the hope that a southwesterly wind after blowing when we go Ryukyu and started wait for the northeasterly wind blowing after the winter solstice at the time we come Because he had no choice but to departing Ryukyu staying three or four months in Ryukyu, which was the vast majority. Leejeongwon was stayed in Ryukyu for five months to talk to management such as many people in the period. He is the literary spirit of Ryukyu, sweet potatoes, tigers legend and talking with various topics also aware of new and seemed more interested in was not the. Especially Leejeongwon had to move and less interested in their written Ryukyu language and people in life. This attention compiled after Ryukyu private appear with the result of a study of 『琉球譯』.
    Meanwhile, Baekjun(柏葰, ?-1859) Queen of the Chosun dynesty of Korea is reportedly passed away in 1843 to hear a double as Hangheung or adverbs baekjjun in the 20th of December on a mission. February 7, starting this gambling in Beijing on January 12, 1844, across the Yalu River, Hanyang for mourners by a star on Feb. 21 after only three days climbed to leave for home on February 24 a journey back to beijing on 1 per month. Sahaeng size Jeongsa, busa, tongkwan about 21 and 22 people. estimated it for about. leave 『奉使朝鮮驛程日記』 and 『薜箖吟館钞存』 through the Chosun sahaeng Baekjun. The 『奉使朝鮮驛程日記』 was a travel diary, published in May that year, and 『薜箖吟館钞存』 is poetry between Beijing and which go to Seoul built it has gathered. Starts from Euiju a mission of the Baekjun Jeongju, Anju, Pyongyang, Hwangju, Kaesong In half a dozen such as Wonjeopsa, Chabigwan, Gijaegwan, Chosun Dynasty, such as leaders, welcomed seems to have had a statue.
    Baekjun 3 nights 4 days to complete an official mission and return. Geographical conditions, unlike Ryukyu does not count and who can go straight it does not need the days. According the 32 『薜箖吟館钞存』 to sahaengsi the Baekjun at the time Wonjeopsa Chobyeonghyeon(趙秉鉉, 1791-1849), Chabigwan Leesangjeok(李尙迪, 1804-1865) and included a city make responses content. In fact, Chobyeonghyeon and elsewhere in the anthology Leesangjeok looks exchanged content, poetry and Baekjun. Pursue a friendly relations and personnel of the Chosun Dynasty because didn't officially has a long work or activities such as paper or write the words in debt to appears to have created a space of. Could after visiting time saheong is shorter than the Ryukyu Chosun this is by road compared to the other side, who was the year to one side because he can. Of Chosun dynasty because more or less remote to a Choung age mission travel and Ryukyu destination Did you don't think that of a long distance.

    참고자료

    · 없음
  • 자주묻는질문의 답변을 확인해 주세요

    해피캠퍼스 FAQ 더보기

    꼭 알아주세요

    • 자료의 정보 및 내용의 진실성에 대하여 해피캠퍼스는 보증하지 않으며, 해당 정보 및 게시물 저작권과 기타 법적 책임은 자료 등록자에게 있습니다.
      자료 및 게시물 내용의 불법적 이용, 무단 전재∙배포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저작권침해, 명예훼손 등 분쟁 요소 발견 시 고객센터의 저작권침해 신고센터를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해피캠퍼스는 구매자와 판매자 모두가 만족하는 서비스가 되도록 노력하고 있으며, 아래의 4가지 자료환불 조건을 꼭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파일오류 중복자료 저작권 없음 설명과 실제 내용 불일치
      파일의 다운로드가 제대로 되지 않거나 파일형식에 맞는 프로그램으로 정상 작동하지 않는 경우 다른 자료와 70% 이상 내용이 일치하는 경우 (중복임을 확인할 수 있는 근거 필요함) 인터넷의 다른 사이트, 연구기관, 학교, 서적 등의 자료를 도용한 경우 자료의 설명과 실제 자료의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

“문화와융합”의 다른 논문도 확인해 보세요!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
  • 전문가 요청 쿠폰 이벤트
  • 전문가요청 배너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5년 12월 05일 금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2:43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