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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 사상의 종착점과 ‘풍류’의 발현 (The Ideological Accomplishment of Choi Chi Won with the Realization of Poongr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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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등록일 2025.06.27 최종저작일 20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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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 사상의 종착점과 ‘풍류’의 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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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지정보

    · 발행기관 :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국학연구원
    · 수록지 정보 : 仙道文化 / 14권 / 177 ~ 217페이지
    · 저자명 : 신운용

    초록

    이 글의 목적은 최치원 사상의 종착점이 어디인지, 「난랑비서」의접화군생이 어떤 의미인지를 진흥왕 37년조의 화랑에 대한 기사를중심으로 살펴보는데 있다. 아울러 난랑은 어떠한 인물인지를 경문왕과 효종랑을 예로 들어 밝히려고 한다.
    최치원의 사상은 주로 유불도를 중심으로 논의되어 왔다. 특히 유교를 중심으로 유불도를 회통한 인물이라는 것이 학계의 대체적인평가이다. 최치원은 난랑비서문에서 “신라에 풍류라는 현묘한 도가있는 데 이 도는 선사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고 그 핵심은 삼교를 아우르는 접화군생(接化群生)에 있다”고 하여 자신의 사상적 종착점이풍류임을 선언하였다. 여기에서 최치원 사상의 종착점을 확인할 수있다. 그의 풍류사상은 동인의식에 의해 강력히 추진되었던 것이다.
    이 점에서 그가 언급한 유불도에 대한 연구는 그의 사상적 편력을이해하는데 유용하지만 그의 사상적 지향점을 밝히기에 역부족이다.
    그렇다면 그가 자신의 사상적 종착점인 풍류를 현묘지도라고 설명한 근거인 접화군생은 어떤 의미이고 그 내용을 무엇일까? 이는 풍류의 본질을 밝히는 데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이에 대한 글쓴이의생각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우선 접화군생에 이르는 과정은 세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단계는 ‘유오산수(遊娛山水)’⋅‘무원부지(無遠不至)’하면서 ‘상열이가악(相悅以歌樂)’을 베푸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는 화랑들이 전국시찰 과정에서 백성들과 더불어 가악을 펼치면서 민심을 파악하는 것으로이해된다. 다음 단계는 상마이도의(相磨以道義)로 전 단계에서 파악된 ‘민심이라는 도의(道義)’를 서로 닦고 실천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마지막 단계는 지기인사정(知其人邪正)이다. 이는 ‘상마이도의’의 결과로 백성들이 화랑들의 도의를 실천한 과정과 결과를 보고서 국왕을 비롯한 화랑 등의 지도세력의 사람됨(옳고 그름)과 정치의 선악을판단하여 지도자를 선택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무리들과 함께 어울리면서 그들에게 사람답게 살 수 있는방법을 가르치는 것” 또는 “무리들과 함께 어울리면서 그들을 가르치고 살리는 것”으로 정의되는 접화군생은 민심이라는 도의가 유오산수⋅무원부지⋅상열이가악, 상마이도의, 지기인사정의 과정을 통하여 구현된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난랑비서」의 작성연대를 밝히는 일은 최치원의 사상이 풍류로 귀착된 시점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반드시 밝혀야 할 과제이다. 그가난랑비서를 쓴 시점은 신라의 전통문화에 강렬한 자부심을 드러냈던진성여왕대로 파악된다.
    난랑이 누구인가 하는 문제는 「난랑비서」가 진성여왕대에 완성되었다면 경문왕일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는 것으로 정리된다. 진성여왕대는 ‘효’를 정치이념으로 내세운 화랑이 주요정치세력으로 등장하던 시기였다. 이들은 삼대목을 편찬하는 등 신라의 전통문화의 가치를 역사의 전면에 내세웠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에서 난랑이라는인물이 주목을 받았을 것이다. 특히 풍류를 크게 진작시킨 인물이 바로 경문왕이라는 최치원의 지적은 대단히 큰 의미를 갖는다.
    또한 유교를 보편성이라는 입장에서 파악하면서 풍류를 특수성이라는 시각으로 본 기왕의 연구는 풍류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보편성은 진리에 닿아 있다”는 점에서 본다면 풍류는 진리의 구현 그 자체이고 보편임이 분명하다. 때문에 최치원은 풍류를 ‘현묘지도’로 표현하였고 그 핵심을 ‘접화군생’이라고 단언했던 것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맥락에서 그가 유불도를풍류의 하위개념으로 본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아울러 풍류는 경문왕대와 진성여왕대에 구체적으로 구현되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경문왕의 ‘겸손’⋅‘근검절약’⋅‘절제된 권력행사’는접화군생 실현을 위한 정치사상이었다. 이는 향가의 편찬으로 구체화되었던 것이다. 진성여왕대에는 효종랑을 중심으로 하는 화랑세력이‘효’를 정치사상으로 전면에 내세웠다. 특히 진성여왕은 ‘효사상’을 국제화 시키는데 앞장섰던 인물로 평가된다. 이처럼 풍류사상이 부각되던 진성여왕대의 향가집 삼대목 편찬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최치원이 왕건과 관계가 있다는 사실은 기왕의 연구에서 부정되고있다. 하지만 풍류의 핵심인 접화군생이 구현되지 않는 상황에서 그가 왕건과 같은 새로운 세력이 접화군생이 구현된 인향의 부활을 열망한 것은 자연스런 현상으로 보인다.
    풍류사상이 진성여왕 이후 신라에서는 구현되지 않았지만 고려의팔관회와 선랑제도로 명맥을 이어갔다. 그리고 풍류는 고려말 단군에 대한 인식이 깊어지는 여말선초, 임진왜란 이후, 조선말의 동학과대종교 출현으로 이어져 한민족의 사상적 에너지가 되었던 것이다.

    영어초록

    This research aims to examine where Choi Chi Won, the great philosopher of Shilla, destined his ideology, how he described the concept of Chopwhakunsang(接化群生) by writing Nanrangbisomun(words on the tombstone of Nanrang), and to predict who Nanrang was by taking examples of King Kyongmun and Hyojongrang and looking over the articles about Hwarang at the time of King JinHeung.
    About the matter of who Choi Chi Won was, his academic achievement and its impact, it has only been discussed based on the early stage of his study on Confucianism, Taoism, and Buddhism. Nanrangbiso, however,contains his supreme understanding which is described as Poongryu(風流). He wrote: “there is mysterious fundamental principle that I declare Poongryu. It is also observed in prehistoric times, whose pivotal point turns out to be Chophwakunsang”. In other words, his study on Confucianism,Taoism, and Buddhism worked as the mere stage for Poongryu.
    It is an important matter of elaborating the essence of Poongryu. It is showed as three stages as following: firstly, it is the process of Yu-o-san-su (遊娛山水), Muwonbuji(無遠不至), and Sangyol-i-ga-ak(相悅以歌樂). It is understood that hwarang, the crack unit of Shilla, had time to communicate with people to share public sentiment during their inspection all over the nation. Also, Hyang-ga(native songs) is understood as political and religious devices to keep the nation harmonious. Sang-ma-i-do-ui (相磨以道義), as next, worked as practicing policies for their understood public sentiments.
    Finally, Ji-gi-in-sa-jong (知其人邪正)means they would choose a leader who well performed the tasks and apprehended the people during the whole process.
    Thus, Chophwakunsang is about how well apply what people of Shilla needed into national projects and finally reach perfection through the process of Yu-o-san-su, Muwonbuji, sagyol-i-ga-ak, Sang-ma-i-do-ui, and Jigi-in-sa-jong.
    It is thought the only way to know the time when Choi Chi Won went to meet the concept of Poongryu by revealing the time he finished Nanrangbiso. It is assumable that he might finish it at the time of Queen Jinsong, when he was full of pride about his mother country, Shilla.
    Therefore, it is supposed that Nanrang might be King Kyongmun if it is written at the time of Queen Jinsong. ‘Hwarang’s were politically empowered based on the ideology ‘Hyo(respection for the elderly and parents)’. They propagated the traditional culture of Shilla and its value with the publication of SamDaeMok(the book of Hyang-ga) and so on.
    Nangrang might be received attention for meeting demands of the time.
    In the same vein, it is meaningful that Choi Chi Won considered King Kyongmun as the figure who developed the ideology ‘Poongryu’.
    Misunderstanding shown among pre-existing studies considers Poongryu as distinct characteristics lacking universality and, therefore, misses the essence. Still, Poongryu is explained as the eternal truth by Choi Chi Won.
    In this context he made it clear that Poongryu is about mysterious universe-moving force whose essence is Chophwakunsang(harmony). It is how he viewed Confucianism, Buddhism, and Taoism to be the subordinate conception for Poongryu.
    Poongryu had been fully adapted to the value of society at the time of King Kyongmun and Queen Jinsong; ‘moderation’, ‘thriftness’, and ‘modesity’were the policies of King Kyonmun to realize Chophwakunsang, which was specified such as the publication of Hyang-ga. Hwarangs at the time of Queen JinSong, with the leader ‘Hyojongrang’, propagated ‘Hyo’ideology. Queen Jinsong is known as the figure who tried to generalize ‘Hyo’. Therefore, at the time of the queen, the publication of Samdaemok,the book of hyang-ga, was inevitable.
    The pre-existing studies denied the relations between Choi Chi Won and Wang Gon. However, it is no wonder that he supported Wang Gon based on his ideology and longed for new era where Chophwakunsang is realized. Poongryu had been hardly acknowledged after Queen Jinsong,yet it kept alive through Koryo period with political devices such as Pal-kwan-hoi and Son-rang system. As studied above, Poongryu has been working as the essential power to keep Korean spirit through the time of Shilla and Koryo, the Imjin war, and at the end of Choson, appeared as Donghak and Dajonggyo.

    참고자료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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