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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대 ‘親淸派’의 존재에 대한 재검토 (A Study of the Appearance of a “Pro-Manchurian Group” in the reign of King Inj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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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등록일 2025.06.24 최종저작일 20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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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대 ‘親淸派’의 존재에 대한 재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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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지정보

    · 발행기관 : 조선시대사학회
    · 수록지 정보 : 조선시대사학보 / 81호 / 109 ~ 136페이지
    · 저자명 : 우경섭

    초록

    1637년 남한산성의 항복 이후, 夷狄이라 멸시하던 청나라에 사대하게 된 조선인들은 그간 명나라 주도의 동아시아 질서 속에서 어렴풋이 간직하던 중화주의적 세계관의 모순을 절감하게 되었다. 그들이 직면했던 사상적 곤혹감 중에는 청에 대한 저항의식과 더불어 순응과 체념의 정서 또한 공존하고 있었다.
    17세기 전반부터 조정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명나라와 후금의 침략에 시달리던 평안도 백성들의 경우처럼, 민심은 이미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고국을 버리고 후금에 귀화하여 만주족의 일원으로 살아가기를 희망한 조선 백성들이 속출하였고, 두 차례의 전쟁이 일어나자 그들은 청군의 길잡이가 되어 조선 침략의 선봉에 섰다. 그리고 인조와 김류․김자점 등 공신들은 남한산성 입성 당일부터 생존을 위해 화친의 방도를 모색했고, 척화론자들에게 패전의 책임을 전가하며 자신들의 무능함을 감추려 했다. 민간에서도 청에 대한 적개심은 시간의 경과에 따라 날로 해이해져 갔고, 현실론의 입장에서 청에 대한 臣服을 감수하려는 분위기가 대세를 이루어갔다.
    더 나아가 호란을 통해 목도한 청의 강성함에 순응하여, 청의 세력을 등에 업고 개인의 영달을 도모하려는 親淸派가 출현하였다. 정명수를 중심으로 결집한 역관․잠상․서리들의 존재와 이계의 고변 사건, 그리고 친청파 숙청을 명분으로 일어난 인조 말년의 심기원 역모 등을 보면 병자호란 직후 조선의 여론은 생각보다 훨씬 유동적이었고 훨씬 더 ‘친청적’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무엇보다 남한산성의 항복 이후 조선이 참여한 椵島 정벌과 征明軍 파견은 그 배경이야 무엇이었던 간에 조선 정부가 反明親淸의 노선을 선택했음을 보여주는 명확한 증거였다.
    따라서 그간의 통설에서 주장하듯, 병자호란 패전 이후 조선의 정치․사상계가 반청 이데올로기로 획일화 되어 있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인조와 공신들은 국가를 통치할 도덕적 명분과 현실적 방향성을 상실했고, 그 결과 마음을 다한 친청사대는 아니라 변명할지라도, 청나라의 지배를 용인하고 적응해 가는 방향으로 국가를 이끌어 갔다. 명청교체라는 대세 속에서, 조선의 조정과 백성들은 직면한 현실에 순종하며 청에 대한 사대를 체득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영어초록

    Koreans realized that the Chinese-led East Asian order was such a theoretical contradiction, after, in 1637, they began to serve the Qing Dynasty established by people who they had belittled as barbarians. Ideologically, their embarrassment was about resistance against Qing Dynasty, but it also contained the spirit of adaptation and resignation.
    People was greatly disturbed. In Pyeong-an Province, they had suffered from the cruelty of the Ming and the Later Jin without government help since the former half of the seventeenth century. They hoped to nationalized themselves in the Late Jin to be one of the Manchus, and they served as a guide of its army when it invaded Joseon twice.
    On the other hand, King Injo and the contributors, Kim Ryu and Kim Ja-Jeom, etc., found ways to make peace with the Qing for their own safety from the first day of entering Namhansanseong. They even tried to hide their incompetence and criticize that the anti-peace group was responsible for the defeat. Popular hostility towards the Manchus was diminished day by day. The prevailing view seemed that people agreed to eat humble pie in a realistic way.
    Moreover, it is undeniable that there appeared a pro-Manchurian group. Its members adjusted to the power of the Manchus which they had witnessed during the wars, and took advantage of them to pursue their own interests. Right after Manchus' invasion of Joseon in 1636, general Korean opinion was flexible and pro-Manchurian much more than we think. It is shown in collusion of translators, smugglers, and petty officials with Jeong Myeong-Su as the central figure, Lee Gye's accusation to the Manchus, and the act of treason for the purpose of purging the pro-Manchurian group in the end of the reign of King Injo. Above all, conquering Ga-Island and sending an army to conquest the Ming evidently prove that Joseon's government chose to follow anti-Chinese and pro-Manchurian policy.
    Therefore, unlike common theory, it is hard to tell that world of politics and thoughts was unified as loyalty to the Great Ming and resistance against the Qing. King Injo and the contributors lost a sense of realistic direction as well as a moral cause to rule the country. As a result, they accepted the Qing's domination and adjusted to it, although they did not serve the country with all their hearts. In the Ming-Qing transition, Joseon's government and people adapted themselves to reality and learned to serve the Qing.

    참고자료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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