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글쓰기 2.1 업데이트
PARTNER
검증된 파트너 제휴사 자료

사명당 유정의 강화활동을 통해 본 조․일 갈등과 치유 (Conflict and restoration of the relationship between Korea and Japan from the perspective of Samyungdang Yujeong’s peace conference)

25 페이지
기타파일
최초등록일 2025.06.22 최종저작일 2017.12
25P 미리보기
사명당 유정의 강화활동을 통해 본 조․일 갈등과 치유
  • 미리보기

    서지정보

    · 발행기관 :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원
    · 수록지 정보 : 불교학보 / 81호 / 223 ~ 247페이지
    · 저자명 : 이철헌

    초록

    임진왜란 이전 조선과 일본의 갈등은 남부지방을 침략하는 왜구문제였다. 고려 말부터는 남해안뿐만 아니라 전라도, 경기도, 강원도에 이르기까지 전국에서 왜구들이 공물 운반선을 약탈했다. 끊임없는 왜구의 침탈과 살육은 조선조에 들어와서도 계속되었다.
    조선은 일본이 왜구의 노략질을 통제해 달라며 매년 세사미(歲賜米)를 대마도에 주고, 삼포(三浦)를 열어 교역을 허가하고 서로 사신을 보내는 등 일본과 강화를 이어갔다. 그러나 임진왜란으로 조선무역이 끊어지자 전쟁이 끝난 직후부터 대마번(對馬藩) 소 요시토시(宗義智)는 여러 차례 사신을 보내 강화를 요청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는 국내정치의 구심력을 강화하기 위해서 명․조선과의 국교회복을 필요로 하였기에, 가또 기요마사(德川家康)와 소 요시토시의 조선강화교섭을 한층 본격화했다. 조선은 임시방편으로 일본의 거센 강화요청을 무마하고자, 정식 사신이 아닌 개인 자격으로 국서(國書)를 주지도 않고 사명대사를 일본에 보냈다. 유정은 조․일 두 나라의 갈등을 인식하고 원인을 알고 있었고 갈등을 치유함으로써 두 나라의 이익을 증대할 수 있다는 걸 알았기에 중생을 구제한다는 자비의 마음으로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유정과 이에야스의 회담으로 조선에서 일본과의 강화가 허락되고 1607년에는 이에야스의 국서에 대한 회답과 끌려간 동포들을 쇄환하기 위한 사신을 보내면서 조선통신사로 이어졌다. 유정의 渡日 이후 260년간 동북아시아가 한차례의 전쟁과 분쟁이 없이 안정과 공존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은 유정이 개척한 조선통신사외교의 최대성과였다고 할 수 있다. 유정은 수행자로서 조선․일본의 갈등을 오직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보살의 자비심을 실천함으로써 갈등을 해결했다.

    영어초록

    Before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conflict between Joseon and Japan involved instances in which Japanese pirates made aggressive advances in southland. Since the Late Goryeo kingdom, these pirates had plundered ships carrying tributes not only from the south sea, but from all parts of the country, including Jeolla-do, Gyeonggi-do, and Gangwon-do. The widespread looting and slaughter of Japanese pirates continued during the Joseon dynasty.
    Joseon prevented Japan’s plundering, and remained at peace by providing Sesa-rice to Tsushima every year. This allowed commerce to open Sampo so that letters could be sent. However, Joseon’s trade efforts were terminated due to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Tokugawa Ieyasu advanced the peace negotiations of Kato Kiyomasa and So Yoshitoshi for the restoration of diplomatic relations between Ming and Joseon in order to solidify his status in the domestic situation. Joseon sent Monk Samyeong as a private citizen without credentials, not as an envoy, but to appease Japan’s strong demand for peace.
    Yujeong knew about the conflict between Joseon and Japan, as well as the reason for it. He endeavored from the heart to save living things because he recognized that healing the trouble could provide benefits to both countries. Talks between Yujeong and Ieyasu eventually allowed peace among Joseon and Japan. Leyasu’s reply and letters to send back captives were transmitted to the Joseon news agency in 1607.
    For 260 years after Yujoeng’s visit to Japan, Northeast Asia was able to stabilize and coexist due to the Joseon news agency. Yujeong resolved the conflict between Joseon and Japan by practicing mercy to save living things as an ascetic.

    참고자료

    · 없음
  • 자주묻는질문의 답변을 확인해 주세요

    해피캠퍼스 FAQ 더보기

    꼭 알아주세요

    • 자료의 정보 및 내용의 진실성에 대하여 해피캠퍼스는 보증하지 않으며, 해당 정보 및 게시물 저작권과 기타 법적 책임은 자료 등록자에게 있습니다.
      자료 및 게시물 내용의 불법적 이용, 무단 전재∙배포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저작권침해, 명예훼손 등 분쟁 요소 발견 시 고객센터의 저작권침해 신고센터를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해피캠퍼스는 구매자와 판매자 모두가 만족하는 서비스가 되도록 노력하고 있으며, 아래의 4가지 자료환불 조건을 꼭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파일오류 중복자료 저작권 없음 설명과 실제 내용 불일치
      파일의 다운로드가 제대로 되지 않거나 파일형식에 맞는 프로그램으로 정상 작동하지 않는 경우 다른 자료와 70% 이상 내용이 일치하는 경우 (중복임을 확인할 수 있는 근거 필요함) 인터넷의 다른 사이트, 연구기관, 학교, 서적 등의 자료를 도용한 경우 자료의 설명과 실제 자료의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

“불교학보”의 다른 논문도 확인해 보세요!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6년 02월 18일 수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5:13 오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