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글쓰기 2.1 업데이트
  • AI글쓰기 2.1 업데이트
  • AI글쓰기 2.1 업데이트
  • AI글쓰기 2.1 업데이트
PARTNER
검증된 파트너 제휴사 자료

1950년대 재중일본인 인양문제를 둘러싼 중일간 협상 (China-Japan Negotiation in the 1950s on the Repatriation of Japanese Residents in China -The Process of Nullification of the Way of Three-groups Talks-)

37 페이지
기타파일
최초등록일 2025.06.22 최종저작일 2007.06
37P 미리보기
1950년대 재중일본인 인양문제를 둘러싼 중일간 협상
  • 미리보기

    서지정보

    · 발행기관 : 한일민족문제학회
    · 수록지 정보 : 韓日民族問題硏究 / 12호 / 59 ~ 95페이지
    · 저자명 : 오일환

    초록

    1953年北京で成立した三団体方式によって中国と日本の間で日本人引揚が行われていたが、日本政府は、中国に対する交渉力や主導権を取り戻すためには、何よりも三団体方式を解消する必要があった。 三団体方式を解消するため日本政府が引き出した最初のカードは、政府間直接交渉だった。それはジュネーブ駐在の日中両総領事間のやりとりを通じて政府間直接交渉を打診することであった。日本政府は55年第1次ジュネーブ総領事間のやりとりで、引揚問題のほか、消息不明者の調査に限定した政府間交渉を提案したが、中国は日中国交正常化を前提にした交渉でなければ応じない、引揚及び消息不明者調査問題はこれまでの通りに三団体方式で行いたいと拒絶した。 当時に日本側が中国との政府間交渉に積極的に乗り出した背景には、ジュネーブでの米中会談の進行による米国の対中共態度変化の可能性、中国に対する欧米及び東南アジアの微妙な変化、中国の国連加入可能性など、中国の地位向上に備えた日本側の交渉力を保つためであり、日ソ交渉が進む中でソ連と中国を相互牽制するための下準備としての意図も考慮したのであった。 ところが、日本政府の対中接近の意図は引揚問題をめぐる三団体交渉の解消と対中交渉力の維持のためで、日中国交正常化まで至らない範囲内での制限的なことであった。政府間直接交渉の試みが失敗に終わると、その代案として登場したのは赤十字社間交渉である。それは、三団体の中で準政府機関の面を持つ日赤を親中的な二団体と切り離し、日赤と中紅だけの赤十字社間交渉に限定させると三団体方式は自然に無力化し、日本側としては日赤を通じ日中交渉でより積極的に対応できるという意図であった。 外務省から送り込まれた井上益太郎外事部長の主導によって行われた56年3月の中紅との単独秘密会談で、53年の北京協定以外の新たな事項については日赤と中紅だけの両赤十字社間の交渉で行うといういわゆる北京了解が成功したように見えた。 ところが、まもなく天津で開かれた戦犯引揚交渉で、北京了解が中国側によって否定された。井上外事部長が主導する日赤は戦犯家族の見舞い訪中や自由往来問題については北京協定になかった新たな事項として北京了解に従って両赤十字社間交渉で取り扱うことを主張したが、二団体と中紅の猛反発に遭い苦戦した。中国側は日赤が三団体方式を脱した赤十字社間交渉を固執すれば、戦犯の引揚が破産する恐れがあるという圧力をかけて留まった。三団体方式は維持され赤十字社間交渉の試みは失敗したものの、日赤と二団体の溝は深まり三団体方式の前途は険しくなることを見せ付けた。 その後、岸内閣は57年5月、再び佐藤正二ジュネーブ総領事を通じて約4万人に及ぶ消息不明者名簿を中国に提示し政府間直接交渉を試みた。そして、6月以降、広瀬正雄引揚特別委員会委員長は日本政府や国会を代表し周恩来総理及び李徳全中紅会長あてに、行方不明者や未帰還者に関する交渉のための訪中を申し出たり、政治家レベルでの交渉を提案した。しかし、岸内閣は親米․台, 反共路線を掲げていたので、中国側は第1次総領事間のやりとりの時より厳しい避難をおくりながら政府間または政治家間交渉をすべて拒否した。 そうした中で、留守家族団体全国協議会を率いる有田八郎元外相が中国に赴き、週恩来総理をはじめとする中国首脳部と消息不明者調査問題を議論したが、中国は依然として三団体方式を通した解決を主張した。ただ中国側もこれまで通りに三団体方式を通した消息不明者問題の可能性と、全協との交渉可能性は示唆した。ところが、日本政府は有田元外相の訪中以降在中日本人引揚及び消息不明者調査問題の打ち切りを本格的に検討し始め、事実上三団体方式を解消する方針に傾いた。 ところで、岸内閣発足以来引揚問題と第4次民間貿易協定をめぐり日中関係が硬化する中、日中関係の閉塞状況を打開するため第2次中紅代表団の訪日が進められた。ところが、箱根・東京会談を通じて確かめられた三団体方式は以前とは極めて異なるものであった。日本側は、異例に政府・自民党・国会レベルで一致し、帰国船ではなく日中間便船を利用することや、再渡航者に対する船賃の自腹を要求するなど、日赤と二団体の協力体制は崩れさっていた。しかも、世論も第1次中紅代表団の訪日の時とは正反対に回り、中国側に対する批判の姿勢を見せていた。そこで、中紅側は、日本側の便船案と船賃自腹案を受け入れるような態度を示しながら、慌てて離日した。箱根・東京会談は、これまでの三団体方式が順調に働かない現状を示し、事実上三団体方式は形骸化の入口に差しかかったことを意味した。 一方、中国は形骸化する三団体方式を蘇らせるため、わずかに残った在中日本人や戦犯の引揚問題の解決をめぐる交渉を日本側に呼び掛けた。次第に増える引揚希望者のため、便船案は引揚船にかわったものの、再渡航者の船賃自己負担は日本側の要望通りになった。しかも、日本への初里帰り婦人とほかの再渡航者または自由往来者を区別することにより、日本側は引揚問題で大きな統制力を確保することができた。 しかし、当時日中関係は、第4次貿易協定の承認以降、双方の不満が充満した中で発生した長崎国旗事件を境に決別の危機に陥っていた。双方間で非難と報復策が交わされるなか、最後まで続けられていた在中日本人・遺骨の引揚、在日中国人・遺骨の送還事業にも終止符が打たれた。これで53年以降日中関係を規定してきた三団体方式も中断された。 ところが、日中関係における三団体方式は、日朝関係で応用・変形し続けられていたので、交渉方式における三団体方式の完全な解消は、1年後の日朝間ジュネーブ交渉まで待た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

    영어초록

    Throughout the 1950s, the Japanese government tried to nullify the way of three-groups talks in order to take initiative toward China although the two countries had already agreed, in 1953, in the negotiation framework for discussing the return of Japanese residents in China(Beijing Agreement).
    Those three groups were the Japanese Red Cross, the Japan-China Friendship Association, and the Assembly for Peaceful Communication. The reason that the Chinese government insisted on the way of three-groups talks was that Chinese preferred the negotiation between the Japanese social groups, including pro-China groups, and the Chinese Red Cross representing the Chinese government to negotiations between two governments.
    First, Japanese proposed the direct negotiations between the Japanese consul and the Chinese consul in Geneva. However, this attempt failed as Chinese wanted to discuss, in talks, the normalization of relations between the two countries, which Japanese did not want to discuss.
    Next, Japanese tried negotiations between the Japanese Red Cross and the Chinese Red Cross, which could naturally disapprove the way of three-groups talks. In March, 1956, the representative of the Japanese Red Cross, was Inoue, who had worked as an official in the Foreign Affairs Ministry. But these talks also failed, in regard to the repatriation of Japanese residents in China, including Japanese war criminals, the visits of the hometown by the family members in China and the investigation of the missing people and their remains in both countries.
    Therefore, the way of three-groups talks continued as the negotiation framework. Although the Gishi administration attempted the direct negotiation between the two governments and Hirose, a Japanese lawmaker, suggested the talks between politicians from both countries, their proposals were rejected.
    Chinese insisted the way of three-groups talks showing distrust in the Gishi administration, who was obviously biased toward USA and Taiwan. At that time, China and Japan were also in talks about making the 4th private trade agreement as well as discussing repatriation problem.
    During these process, despite all the odds, the repatriation of the Japanese people and remains and the visits of Japan by Japanese residents in China continued until 1958. The way of three-groups talks delineated the relationships between the two countries from 1953 to 1958. But by then, disbelief and disagreement between two countries increased to the extreme level. In result, the way of three-groups talks did not work any more and the repatriation was endlessly suspended as the two governments blamed each other about the responsibility of the rupture.

    참고자료

    · 없음
  • 자주묻는질문의 답변을 확인해 주세요

    해피캠퍼스 FAQ 더보기

    꼭 알아주세요

    • 자료의 정보 및 내용의 진실성에 대하여 해피캠퍼스는 보증하지 않으며, 해당 정보 및 게시물 저작권과 기타 법적 책임은 자료 등록자에게 있습니다.
      자료 및 게시물 내용의 불법적 이용, 무단 전재∙배포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저작권침해, 명예훼손 등 분쟁 요소 발견 시 고객센터의 저작권침해 신고센터를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해피캠퍼스는 구매자와 판매자 모두가 만족하는 서비스가 되도록 노력하고 있으며, 아래의 4가지 자료환불 조건을 꼭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파일오류 중복자료 저작권 없음 설명과 실제 내용 불일치
      파일의 다운로드가 제대로 되지 않거나 파일형식에 맞는 프로그램으로 정상 작동하지 않는 경우 다른 자료와 70% 이상 내용이 일치하는 경우 (중복임을 확인할 수 있는 근거 필요함) 인터넷의 다른 사이트, 연구기관, 학교, 서적 등의 자료를 도용한 경우 자료의 설명과 실제 자료의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

“韓日民族問題硏究”의 다른 논문도 확인해 보세요!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
  • EasyAI 무료체험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5년 10월 15일 수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7:53 오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