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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의 사친 추모와 소령원 어제어필 현판 (King Yeongjo's Formal Worshipping of His Mother and Signboards with Writings and Calligraphies by King Yeongjo in Soryeong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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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등록일 2025.06.16 최종저작일 202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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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의 사친 추모와 소령원 어제어필 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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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지정보

    · 발행기관 : 진단학회
    · 수록지 정보 : 진단학보 / 143호 / 293 ~ 326페이지
    · 저자명 : 金德秀

    초록

    영조는 사친 숙빈최씨의 추숭을 위해 노력을 경주했다. 즉위 직후에 도성 인근에 사당을 건립하고 묘소 입구에 거대한 신도비를 세웠다. 1744년에는 廟號를 毓祥으로, 墓號를 昭寧으로 정했으며 1753년에는 和敬이란 시호를 올리면서 宮園으로 격상시켰다. 등극 이후 소령원을 12차례 전배하며 사모의 정을 피력하는 한편 모친에 대한 그리움을 현판에 아로새겼다. 현재 소령원에는 제청과 재실 터에 주춧돌만 일부 남아 있지만 당시에는 육오당과 기임각 등이 엄숙하게 서 있었고 수많은 현판이 도처에 걸린 채 장중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영조처럼 현판을 애용한 임금은 없었다. 국왕으로서의 의지를 공표하거나 개인적 소회를 피력하기 위해 현판이란 수단을 적극 활용한 것이다. 소령원에 게시된 다양한 어제어필 현판들은 사친에 대한 그리움의 표상이다. 영조가 정성껏 게시했던 소령원 현판 가운데 현전하는 것은 전무하다. 유물로서의 현판은 전하지 않지만 그 내용과 정보가 이왕직에서 정리한 『소령원지』와 『소령수길원보관현판등사』에 활자의 형태로 남아 있다.
    영조 어제어필 현판이 집중된 곳은 제청 육오당과 재실 기임각이다. 『소령원지』에 의하면 육오당에 있던 영조 어제어필 8종 가운데 현판이 4종이었고, 기임각에 있던 영조 어제어필 10종 중에 9종이 현판이었다. 『소령수길원보관현판등사』에 전사된 15건의 현판 중에 영조 어제어필이 6건이고 정조 어제어필이 2건이며 건물 명칭 등을 적은 편액이 7건이다. 『소령원지』와 『소령원현판등사』의 기사를 종합해 보면 소령원에 게시된 영조 어제어필 현판은 19건이고 정조 어제어필 현판은 2건인데 실물로 전하는 것은 정조 현판 1건뿐이다. 이 밖에 영조나 정조 어필 현판이 더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해당 현판의 탑본이나 견양 원고가 현전하기 때문이다. 소령원에 게시된 현판은 『열성어제』 수록 시편의 저본이 되기도 했다. 현판에 적힌 시편과 『열성어제』에 수록된 최종본을 비교해 보면 모호하고 투박하고 산문적인 표현을 보다 구체적이고 완정하고 문예적인 방향으로 윤색하되 원본 제작 시점을 기준으로 한참 뒤에 있었던 일을 작품에 추가하기도 했다. 그리고 시상을 잇는다는 이유로 20년 후에 지은 작품을 앞 시대에 편차하기도 했다. 『소령원지』에 수록된 어제 시문에는 어제의 원형이 구현되어 있으므로 어제 시문의 수정 양상을 파악하는 데 유의미한 정보를 제공하고 『열성어제』 편차 과정의 일부 의문점을 해소해 준다.

    영어초록

    King Yeongjo made efforts for the harvest of his mother, Sukbin Choi. Immediately after his accession to the throne, a shrine was built near the capital city and a huge monument was erected at the entrance of the tomb. In 1744, the names of shrines and graves were given to Yuksang and Soryeong and in 1753 it was upgraded to a Gungwon by posting a posthumous name, Hwageong. After being crowned, he visited Soryeongwon 12 times to express his condolences and engraved on the signboard his longing for his mother. Currently, only some foundation stones remain at the site of the memorial service and the a memorial building, but at that time, Yukodang and Giimgak were standing solemnly, and many signboard hanging everywhere, creating a solemn atmosphere. No king used signboard like King Yeongjo. He actively used the means of signboard hanging to announce his will as king or to express his personal feelings. The various signboard hanging in the major center is a symbol of longing for his mother. None of the signboard hanging that King Yeongjo posted sincerely is on display. Although the signboard as a relic is existing, its contents and information remain in two kinds of books summarized by Yiwangjik.
    The places where Yeongjo's handwritten signboards are concentrated are Jecheong Yukodang and Jasil Giimgak. According to the records of Soryeongwonji and Soryeongsugilwonhonfandeungsa, there were 19 types of signboard written by King Yeongjo and 2 types written by King Jeongjo in the Majewon. Of these, only one signboard was written by King Jeongjo. In addition, it is estimated that there were more signboards written by King Yeongjo and King Jeongjo. This is because rubbed copies of the signboard or sample manuscripts are present. The signboard hanging in Soryeongwon was also the original copy of the work published in Successive Kings' writings. Comparing the work written on the signboard with the final version published in Successive Kings' writings, the ambiguous, clunky, and prose expression was refined in a more specific, complete and literary direction. Based on the time of production of the original, it added to the work that was a long time later. Because it connects the meaning of the work, the work he wrote decades later was also deviated from the previous era. Since the original form of the first work written by King Yeongjo is embodied in Soryeongwonji, it provides meaningful information for grasping the modification of King Yeongjo's work and solves some problems in the editing process of Successive Kings' writings.

    참고자료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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