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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大殿‧中殿 尊號儀禮의 변천과 用樂 고찰 (A Study on King and Queen Eulogistic Title Offering Ritual and Ceremonial Music in Chosŏ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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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등록일 2025.06.15 최종저작일 20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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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大殿‧中殿 尊號儀禮의 변천과 用樂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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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지정보

    · 발행기관 : 한국음악사학회
    · 수록지 정보 : 한국음악사학보 / 49호 / 143 ~ 180페이지
    · 저자명 : 김종수

    초록

    영의정이 대전과 중전의 존호의례를 주관한 조선초에서 영조대1724~1776)까지 서로 다른 공간에서 대전과 중전에게 각각 따로 존호를 올렸다. 대전존호의례는 외정전(外正殿) 한 곳에서 행해졌지만, 중전존호의례는 두 곳에서 나누어 행해졌다. 조선은 내외(內外)가 엄격한 사회여서 외간 남자인 영의정이 직접 중전에게 존호를 올릴 수는 없으므로, 외정전에서 책 (冊)․보(寶)를 내시(內侍)인 상전(尙傳)에게 전하면, 상전이 내정전으로 받들고 가서 여관에게 전해주고, 여관으로 하여금 중전 앞에서 책․보를 읽고 바치도록 했던 것이다.
    이 시기에 대전존호의례에서는 전후고취와 헌가의 음악이 연주되었다. 단 아악(雅樂)을 연주한 1457년(세조 3)에는 전후고취 없이 헌가만 연주되었다. 1772년(영조 48)의 과도기를 거친 이후 세자가 존호의례를 주관하게 되었지만, 세자가 없어서 부득이 영의정이 주관한 1863년(철종 14)과 1873년(고종 10)에도 대전존호의례에서는 전후고취와 헌가의 음악이 연주되었다.
    영의정 주관의 중전존호의례는 외정전, 내정전으로 가는 길, 내정전의 세 공간에서 행해졌는데, 전 시기에 걸쳐 외정전에서는 음악이 연주되지 않았다. 외정전에서 내정전으로 가는 길에서는 조선초에서 영조대까지 음악이 연주되지 않았고, 이미 세자 주관으로 바뀌었지만 세자가 없어서 부득이 영의정이 주관한 1863년과 1873년에는 전부고취(前部鼓吹)가 진작되었다. 내정전에서는 1457년에 하례를 하기 위해 사배할 때 여악이 음악을 연주했으나, 인조반정(1623년) 이후 장악원 소속의 여악을 폐지한 이래 음악이 연주되지 않았다. 내정전에서 남자 악공이 연주할 수는 없고, 행사를 위해 지방에서 여악을 불러올리거나 장님악공을 특별히 준비시키려면는 여러 가지 번거로움이 따르기 때문에 아예 음악을 연주하지 않은 것이다.
    세자가 존호의례를 주관한 1827(순조 27)년 이후 내정전에서 대전과 중전에게 함께 존호를 올리게 되었으며, 등가와 헌가의 음악이 연주되었다. 대전과 함께 중전이 임어한 내정전에서 악공이 연주할 수는 없으므로 문밖 계상(階上)과 뜰에 등가와 헌가를 진설하는 조치를 취했다. 세자가 내정전에서 책․보를 바치는 동안 종친‧문무백관이 외정전에서 동시에 예를 행한 1827년에는 외정전에서 음악이 연주되지 않았으며, 먼저 외정전에서 세자가 종친․문무백관과 함께 대전과 중전의 책․보를 상전에게 전하는 의식을 행한 1888년(고종 25) 이후는 외정전에서 헌가의 음악이 연주되었고, 외정전에서 내정전으로 가는 길에서도 전부고취가 진작되었다.
    영의정이 의례를 주관하던 것에서 세자가 주관하는 것으로 바뀐 것은 세자가 대통(大統)의 계승자이자 왕의 버금가는 자로서 백관을 이끌어갈 존재임을 보다 분명하게 각인시키기 위함이다.

    영어초록

    Royal eulogistic title offering rituals were officiated by the Prime Minister during the reign of King Sejo 世祖and King Yŏngjo 英祖with the ritual places being different for the king and queen. The eulogistic title offering ritual for the king was performed at the external royal court, whereas the ritual for the queen was in two different places. With Chosŏn society strictly avoiding males and females facing each other, the male Prime Minister was not allowed to offer the eulogistic title to the queen. Thus, the Book called ch'aek 冊and Seal, po 寶were delivered at the external court to the eunuch called sangjŏn 尙傳. Sangjŏn took them to the inner court where he handed them over to the female official known as yŏgwan 女官. Then, the female official read them before the queen and offered them to her.
    When offering the eulogistic title to the king, always music was played. When offering the eulogistic title to the queen, music was played by female musicians in the reign of King Sejo, but music was not played after the King Injo Rebellion event (1623). Because female musicians, operating in Seoul, were abolished after the King Injo Rebellion event. The male musician was allowed to play music at the external court, but at the inner court where the queen attended at the ritual, a female musician had to play music.
    However, after 1827 (27th year of King Sunjo's 純祖reign), except for avoidable situations, when the crown prince officiated at the royal eulogistic title offering ritual,he offered the title to the king and the queen at the inner court. The crown prince was a member of the queen family, so he did not need to avoid facing her, allowing the prince to offer the title to the king and the queen in the same place.
    In 1827, while the crown prince was officiating at the eulogistic title ritual for the king and the queen at the inner court, officials were paying homage to them at the external court. After 1888 (25th year of King Kojong's 高宗reign), however, the crown prince, together with officials, delivered the Book and Seal to the eunuch, who took them to the inner court. Then, the crown prince went to the inner court where he offered the Book and Seal to the king and the queen.
    In 1827, when officials were paying homage to the king and the queen at the external court, music was not played. After 1888, however, when the crown prince,together with officials, performed the ritual of delivering the Book and Seal at the external court, music was played. After 1827, when the crown prince officiated at the ritual of offering the Book and Seal at the inner court, music was played, but since the queen attended the ritual at the inner court, the male musician was not allowed into the inner court. So the musician had to play outside the door of the inner court.

    참고자료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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