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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永樂 7年’ 판독에 기반한 <충주 고구려비>의 내용 검토와 충주 지역의 接境性 (A Reinterpretation of the Goguryeo Monument at Chungju Based on the Reading of ‘the 7th Year of Yeongrak’ and Chungju as a Contact Z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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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등록일 2025.06.10 최종저작일 20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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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永樂 7年’ 판독에 기반한 &lt;충주 고구려비&gt;의 내용 검토와 충주 지역의 接境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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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지정보

    · 발행기관 : 한국목간학회
    · 수록지 정보 : 木簡과 文字 / 27호 / 11 ~ 34페이지
    · 저자명 : 이재환

    초록

    본 논문은 2019년 <忠州 高句麗碑>의 비문 前面 상단에서 ‘永樂七年歲在丁酉’라는 年代를 읽어낸 판독안이 <충주 고구려비>의 내용 및 정황과 대비할 때 인정 가능한지 확인해 보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해당 부분은 매우 독특하고 이상한 書寫 方式이나, ‘永□七年歲在[丁酉]’은 충분히 판독 가능하며 두 번째 글자 또한 ‘樂’의 가능성이 높음이 인정된다.
    新羅寐錦과 ‘如兄如弟’하기를 願한다는 비문의 인식이 <廣開土王陵碑>의 新羅에 대한 ‘屬民’ 인식과 차이를 보인다는 점에 대해서는, ‘如兄如弟’를 원한 주체는 現 高麗大王의 祖先王들이었으며, 고려대왕 당시에 비문 다음 부분에 보이는 服屬 儀禮를 통해 ‘屬民’ 인식에 가까운 관계를 구축하였다고 해석이 가능하다. 비문에 등장하는 太子로는 392년 고구려에 質子로 보내졌다가 401년 귀국 후 고구려의 지원 하에 신라 왕이 되는 實聖을 상정할 수 있다. 신라매금은 12월에 충주 지역의 ‘營’에 도착하는데, 이것이 곧 <광개토왕릉비> 영락 10년조에 나오는 신라매금의 ‘身來論事’에 해당한다고 본다.
    기존에는 新羅土內에 고구려인 幢主가 존재하는 양상이 영락 10년의 신라 구원전 이후에나 가능하다고 여겨 왔다. 그러나 <광개토왕릉비> 영락 6년조에 多年間에 걸친 사건들이 몰아서 서술된 것처럼 영락 9년 및 10년조 또한 辛卯年條 이래의 對신라 관계가 일괄적으로 기록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광개토왕은 396년에 이미 400년의 대규모 파병이 가능할 만큼 竹嶺路를 확보하였으므로 충주 진출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충주 고구려비>에서 신라매금을 소환한 장소는 城이나 村이 아닌 ‘營’이었다. 당시 충주를 포함하는 지역들은 고구려·백제·신라 간에 완충 역할을 하는 ‘接境地帶’로서, 기존의 濊 또는 韓 세력들이 온존된 상태로 존재하였다고 생각된다. 비문에서 ‘諸夷’를 판독하기도 하였는데, 이들이 곧 고구려와 신라 간의 접촉에 참여한 ‘접경지대’의 기존 유력자들로 보인다. 이처럼 397년이라는 시점은 비문 연대 파악의 선택지 중 하나가 되기에 충분하다. 향후 이 선택지를 포함하여 <충주 고구려비>에 관한 논의가 더 활발하게 진행되기를 희망한다.

    영어초록

    This article aims to check whether 2019’s new reading of ‘the 7th year of Yeongrak(永樂)’(397 CE) from the Goguryeo Monument at Chungju is compatible with the content of the monument and circumstance. It is very unique and strange to carve the year horizontally on the top of the front of the monument. However, ‘永□七年歲在[丁酉]’ can be read enough and the second letter is likely to be ‘樂’.
    It has been pointed out that the content of wanting to be like brothers with Silla’s 寐錦 is different from King Gwanggaeto-wang’s Tombstone which recognize Silla as ‘屬民’, but it can be interpreted that the person who wanted to be like brothers with Silla was the ancestor of the present king of Goguryeo. The present king established the relationship of ‘屬民’ with Silla through the subordination ritual shown in the monument. As for ‘太子’ of the monument, it can be assumed Silseong(實聖) who was sent to Goguryeo as a hostage in 392 CE and then became king of Silla with the support of Goguryeo after returning to Silla in 401 CE. Silla’s 寐錦 arrived at camp(營) in Chungju in December, which is correspond to ‘come and discuss in person’ of Silla’s 寐錦 recorded in the 10th year of Yeongrak(400 CE) of King Gwanggaeto-wang’s Tombstone.
    Previously, it was thought that the existence of Goguryeo military commander in the territory of Silla was possible only after 400 CE when Goguryeo sent a large army to save Silla. However, as King Gwanggaeto-wang’s Tombstone recorded the events spanning multiple years in the 6th year of Yeongrak, the events recorded at the 9th and 10th years of Yeongrak may have also occurred in the past. In 396 CE, King Gwanggaeto-wang had already secured the Jukryeong route enough to send a large army in 400 CE, so it was possible to advance to Chungju.
    According to the monument, the place where Silla’s 寐錦 was summoned was not a castle or a village, but the camp. At that time, the regions including Chungju was the contact zone between Goguryeo, Baekje and Silla. In their balance of power, the existing societies called Ye or Han were still maintained. ‘諸夷’ in the monument can be seen as the leaders of the contact zone who participated in the contact between Goguryeo and Silla. Thus the time of 397 CE is enough to be one of the options for dating the monument. I hope that the discussion on the Goguryeo Monument at Chungju will be further activated including this option.

    참고자료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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