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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암(峰庵) 변월주(邊月周)의 생애와 활동 - 해인대학과 마산대학을 중심으로 - (Bongam Byun Wolju’s Life and Activity - Focused on the Haein - Masan Colleg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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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등록일 2025.06.05 최종저작일 20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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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암(峰庵) 변월주(邊月周)의 생애와 활동 - 해인대학과 마산대학을 중심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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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지정보

    · 발행기관 : 대각사상연구원
    · 수록지 정보 : 대각사상 / 26호 / 145 ~ 182페이지
    · 저자명 : 김순석

    초록

    변월주(邊月周; 1909∼1975)는 국운이 기울어 가던 시기에 태어나 일제강점기를 거쳐 유신시대를 살다간 근현대불교계의 학승이었다. 어린 시절 그는 서당에서 한문 교육을 받았으나 곧 근대 교육을 받게 되었다. 머리가 영특하였던 그는 전남 장성 공립보통학교를 2학년을 월반하여 수석으로 졸업하였다. 이어서 광주고보 진학에서도 수석 합격하여 반장을 지내는 등 뛰어난 자질을 보였다. 변월주는 1928년 광주학생운동의 주동자로 참여하였다가 퇴학을 당하였다. 1928년 광주고보 4학년 학생들은 만주로 수학여행을 갔었다. 수학여행에서 돌아온 학생들은 일제의 식민정책에 반대하는 구호를 외치고 동맹휴학을 단행하였다. 변월주는 이 사건의 주동자로 지목되어 1928년 12월 20일경 징역 6월에 집행유예 4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1955년부터 1967년까지 변월주는 불교계에서 운영하였던 해인대학과 마산대학에서 강단을 지키면서 후학을 양성하는 길을 걸었다. 그는 광주고보 재학시절 일제의 식민정책에 반대하는 학생운동에 참여하였다. 광주고보 시절 그는 동맹휴학을 주도하면서 학생운동을 이끌었다. 변월주가 주도하였던 광주고보 학생운동은 그 다음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일제강점기 최대의 학생운동이었던 광주학생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다. 변월주는 학생운동의 영향으로 현실에서 많은 제약이 따르자 출가를 결심하게 된다. 이후 그는 독립운동가였던 백용성을 스승으로 출가를 단행한다. 백용성은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 사람이었고, 변월주는 백용성(白龍城 : 1864∼1940)의 전법제자 가운데 한 승려였다. 그는 당대 큰 스승들의 지도를 받으며 불법을 익혔다. 그는 젊은 나이에 스승 백용성으로부터 능력을 인정받아 대각교단이 해체되는 과정에서 조선불교 선종의 이사를 역임하는 등 근현대 불교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변월주는 해방 이후 불교계가 일제강점기의 잔재를 청산하는 과정에서 소위 ‘정화불사’라는 이름 아래 숱한 파행이 자행되는 것을 보고 회의를 느꼈다. 처음에 그는 비구승 측에서 활동하였으나 비구승 측이 종조문제에 있어 보조지눌을 종조로 옹립하는 사태를 보고 대처승단인 태고종에 몸을 담았다. 이후 그는 정화불사에 가담하지 않고 불법을 전파하는 학자의 길을 택하였다. 그는 불교계에서 운영하던 해인대학에서 학생들을 지도하였다. 그러나 이 혼란한 시기에 해인대학은 운영난에 부딪혀서 어려움을 겪었고, 해인대학은 마산대학으로 교명을 변경하게 된다. 그는 교명이 바뀐 마산대학에서 불교학을 강의하였다. 해인대학과 마산대학은 경영위기에 봉착하였다. 마산대학은 조계종단에서 인수하여 정상화될 수 있는 기회가 있기도 하였다. 그 과정에서 마산대학은 동국대학교와 병합하는 방안까지 거론되었으나 결국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불교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경남학원에 양도되고 말았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변월주는 학교를 떠나지 않을 수 없었다. 본고는 해인대학과 마산대학에서 변월주의 지도를 받아 현대불교사에 큰 족적을 남긴 승려들의 행적을 밝혀야 하지만 자료를 찾지 못한 한계로 인하여 후일을 기약할 수밖에 없다.

    영어초록

    Byun Wolju (邊月周; 1909∼1975) was born in the period that national destiny is going down, and he is a learned Buddhist priest of modern Buddhism who had lived in the Yushin era after Japanese colonial era. When he was young, he learned Chinese character in a village school, but soon he had to receive modern education. He was a smart kid, so he skipped the second grades of Jeonnam Jangsung public elementary school and graduated as the top. After that, he was accepted to Gwangju highschool as the top, and he was appointed as a classroom president. Byun Wolju participated in Gwangju Students Independence Movement 1928 in as a leader, so he was expelled from the school. In 1928, fourth grade students of Gwangju highschool made a school excursion to Manchuria. Students who came back from the school excursion shouted opposition slogan against Japanese colonial policy and carried out unified student strike. Byun Wolju was spotted as a leader of this case, so he was sentenced 6 months in prison and four years of probation.
    From 1955 to 1967, Byun Wolju had fostered younger students in Haein-Masan College managed by Buddhism. Byun Wolju decided to leave home because there were many limitations caused by the student movement. After that, he decided to leave home under Baik Yongsung who was an independence activist. Baik Yongsung is one of the 33 Korean leaders at March First Movement. Byun Wolju is a monk among students of Baik Yong Sung(1864∼1940). He received great teachers of the time and learned Buddhist studies. He left his footprints on modern Buddhist history as he was admitted by Baik Yongsung at young age and served as position of a director of Chosun Zen Buddhism.
    In process that Buddhism was cleaning the vestiges of Japanese colonial era after the liberation, Byun Wolju felt doubt after he saw many crippled operation under the name so called 'Jeonghwa Bulsa'. At the first, he was working on positive at Buddhist nun's side, but he was in a married Buddhist priest community named Taegojong after he saw the happening that Buddhist nun enthroned Jinul as the founder. After that, he decided not to participate in 'Jeonghwa' Buddhism and chose to become a scholar who spread Buddhist studies. He taught in Haein College managed by Buddhism. However, in this chaotic era, Haein college changed its school name to Masan college. He lectured Buddhist studies in Masan college. Haein and Masan college encountered management crisis. Masan college had an opportunity to be normalized. In this process, even though a plan to merge Masan college with Dongkuk University was suggested, it did not find the solution so that Masan college was eventually devolved on Kyungnam academy that is not related to Buddhism. Thus, Byun Wolju had to leave the school. He was the big learned Buddhist priest who regarded himself that his mission is to deliver Buddhist studies to youth in right way, and he actually did that.

    참고자료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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