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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암 유종묵의 수행교화와 일본행적에 대한 시론적 고찰 (An Introductory View of Nan-am Yu Jongmuk’s Religious Edification through His Practice and Activities in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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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등록일 2025.06.05 최종저작일 20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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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암 유종묵의 수행교화와 일본행적에 대한 시론적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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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지정보

    · 발행기관 : 한국불교학회
    · 수록지 정보 : 한국불교학 / 79호 / 323 ~ 345페이지
    · 저자명 : 원영상

    초록

    본 연구는 근현대 일본에서 활약한 한국의 승려 가운데 재일동포 사회에불교포교자로서 가장 잘 알려지고, 영향력이 있었던 暖庵 柳宗默(1893~1983) 을 최초로 연구한 것이다. 난암은 3.1독립운동에도 참가하였으며, 만주와 시베리아 등지를 유랑하다가 월정사에 출가하여 漢巖 禪師의 지도를 받아 수행하였다. 1935년에 渡日한 후에는 일본에서 京都 臨濟學院을 졸업하고, 萬壽寺 를 거점으로, 특히 전후 일본에 남아 있던 재일조선인을 중심으로 평생을 대중포교를 위해 헌신했다. 1948년에는 불교인들과 함께 오늘날 재일본불교도협회의 전신인 재일본조선불교도연맹을 창설했다. 그리고 태평양 전쟁 당시희생된 조선인 1,670명의 유해를 일본정부로부터 받아 祐天寺에 안치하였다.
    이후 東京에 國平寺, 大阪에 統國寺를 창건하였다. 그 외에도 대외적으로는아시아불교도평화회의(ABCP) 및 세계종교인평화회의(WCRP) 등의 국제 활동도 활발히 전개하였다. 해방 후, 국내에는 한 번도 들어오지 않은 그는 1983년일본에서 열반하였다.
    난암의 영향을 받은 재일조선인들은 그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 즉, 선승으로서의 철저한 수행자의 자세, 민족의식과 역사에 대한 투철한 의식, 남북한의 평화적 통일에 대한 열망, 재일조선인들의 복리를 위한 희생적인 역할은물론, 한일의 특수한 관계를 넘어서 보편적인 불교사상을 전파하고 실천한 대승적 정신의 구현자로서의 난암을 존경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평생을 비구 수행자로서 불법의 정신을 일관되게 실천한 측면에는 그가 입문했던 禪의 세계에 대한 투철한 사상이 기반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함에도 아직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현재 그의 제자들이 일본의 불교계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그의 정신을 조명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또한 한국에서도 이제부터 그에 관한 본격적인 조명을 통해 한국 근현대불교의 지평을 넓히고자 하고 있다. 향후 난암에 대한 연구의 과제로써는 한암 선사와의 관계에 대한 조명, 일본에 건너가서 그곳에서 포교하고자 한 의도, 해방 후 재일조선인사회와 난암과의 관계 규명, 재일조선인사회에서의 그의 역할에 대한 심도 깊은 조명,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의 불교사상에 대한 연구가 더욱 진행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 이처럼 난암에 대한 연구는근현대 한국불교사나 불교사상사적인 측면에서 한국불교의 외연을 동아시아로 확장시키는 하나의 시금석이 될 것으로 본다.

    영어초록

    This is a study on Nan-am (暖庵) Yu Jongmuk (柳宗默, Ven. Nan-am), a Korean Buddhist missionary and the most well-known and influential Korean resident of modern Japan. Nan-am participated in Korea’s March First Independence Movement and then wandered around Manchuria and Siberia. He later became a Buddhist monk at Woljeong Temple and practiced under the guidance of Seon(Zen, 禪)Master Han-am (漢巖禪師, Ven. Han-am). After going to Japan in 1935, Nan-am graduated from Linzai (Imje) Academy (臨濟學院) in Kyoto. He chose Manzu (Mansu) Temple (萬壽寺) as his base and devoted himself to propagating Buddhism, especially to the Koreans who remained in Japan after the war. In 1948, Nan-am collaborated with other Buddhists to found the Federation of Korean Buddhists of Japan, which later became the Korean Buddhist Association of Japan which is still active today. He received from the Japanese government the remains of 1,670 Koreans killed during the Pacific War and enshrined them in Yuten(Ucheon) Temple (祐天寺). He established Kokuhei (Gukpyeong) Temple (國平寺) in Tokyo and Toukoku (Tongguk) Temple (統國寺) in Osaka. In addition to his activities in Japan, Nan-am was also vigorously active in international issues through the Asian Buddhist Conference for Peace (ABCP) and the World Conference on Religion and Peace (WCRP). He never returned to Korea and entered nirvana in 1983.
    Koreans in Japan who were influenced by Nan-am revere him highly. They respect him for the nobility of his mind; his keen awareness of peoplehood and history; his desire for the reunification of South and North Korea; and his spirit of sacrifice in serving the welfare of Koreans in Japan. Additionally, they respect him for his true Mah.y.na spirit through which he spread and acted on universal Buddhist values. However, above all, they respect Nan-am because he embodied the Buddhist spirit consistently as a celibate monk his entire life based on his unwavering faith in the Seon world he chose and practiced as a bhikkhu.
    Nonetheless, a historical evaluation of Nan-am has never been done. His disciples in Japan still practice Buddhism and are now trying to cast a spotlight on his spirit of devotion and sacrifice. In addition, Koreans themselves have an interest in expanding Buddhism’s prospects in Korea, and therefore, should make an earnest evaluation of Nan-am and his life. Henceforth, we should do more research on Nan-am, such as a review of his relationship with Seon Master Han-am; his intention to go to Japan to propagate Buddhism; an examination of the relationship between Nan-am and Korean society in Japan after Korea’s liberation from Japan; an in-depth assessment of his role in Korean society in Japan; and his contribution to Buddhist thought. As such, studies of Nan-am could be a touchstone to enhance the role of Korean Buddhism in East Asia in terms of the history of modern Korean Buddhism and the history of Buddhist thought.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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