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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年(哲宗 13) ‘李夏銓 獄事’의 전말과 그 의미 -『左捕廳謄錄』·『推案及鞫案』을 중심으로- (The 1862 Yi Ha-jeon(李夏銓) Scandal(獄事). and its Meaning -Examination of the Left-Podo-cheong Deung’rok(左捕廳謄錄), Chu’an-geub-Gug’an(推案及鞫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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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등록일 2025.06.04 최종저작일 202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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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年(哲宗 13) ‘李夏銓 獄事’의 전말과 그 의미 -『左捕廳謄錄』·『推案及鞫案』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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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지정보

    · 발행기관 :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 수록지 정보 : 한국학논총 / 63권 / 349 ~ 394페이지
    · 저자명 : 김정자

    초록

    1862년(철종 13) 2월에 경상도 지역에서 시작한 壬戌農民抗爭이 일어났다. 국가에 의한 부세 수탈의 폐단 때문이었다. 농민 항쟁의 결과로, 정부에서는 三政釐正廳을 설치했다. 그런데, 7월에 전라도 康津 사람 李載斗가 포도청에 金順性이 李夏銓을 推戴하려는 ‘反正’을 모의했으며, 武臣들을 모아 궁궐과 이정청을 습격하려 한다는 변란 계획을 염탐하여 고변했다.
    포도청의 심문에서 김순성은 誣告라고 주장했지만, 李兢善이 ‘반정’ 모의를 들었다고 진술하자, 김순성은 이긍선과 이재두를 원망하며, 모의한 사실을 인정했다.
    鄭元容과 金汶根은 哲宗에게 推鞫을 요청했다. 추국청에서 김순성은 흉년으로 인한 쌀값의 폭등으로 인심이 안정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반정’을 모의한 죄를 자복했고, 이긍선은 모의하려 한 사실을 알고도 알리지 않은 죄를 자복했으며, 謀反大逆罪로 사형당했다.
    철종은 역적들에게 농간당했다고 여긴 이하전을 제주도에 圍籬安置했다. 그러나, 이어진 海南 사람 任馹熺의 親鞫·庭鞫에서 김순성의 사주로 全羅右水虞候 朴載仁과 내통한 편지가 결정적 증거가 되어 이하전에게 賜藥이 내려졌다.
    이 사건은 사회적으로는 경상도 지역에서 시작한 ‘임술농민항쟁’과 더불어 충청도 지역의 인물과 전라도 지역의 무관들이 함께 ‘반정’을 도모한 사건이었고, 정치적으로는 왕실 종친 중 덕흥대원군의 봉사손 이하전이 죽임을 당한 후, 이듬해인 12월에 사도세자의 후손이자, 은언군의 손자였던 철종이 후사 없이 서거하자, 정조·순조·효명세자(익종)·헌종 연간 사도세자와 그 후손의 보호를 주장했던 인물들의 후손들이 결집하며, 은신군의 봉사손인 남연군의 손자이자 이하응의 둘째 아들 고종이 즉위하는데 영향을 끼치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결과, 익종의 후사로 즉위한 고종은 이하전을 신원시켜주며, 사도세자를 莊祖로 추숭하고, 정조 연간의 개혁정치를 이어서 정치·사회·경제·문화적인 모든 측면에서의 제도를 재정비했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영어초록

    In February 1862, 13th year of King Cheoljong’s reign, the Imsul-year Peasantry war(壬戌農民抗爭) broke out. In response, and also as a gesture of reform, the Joseon government newly installed the Samjeong Ijeong-cheong(三政釐正廳) office. Then in July, an accusatory report filed to the Podo-cheong(捕盜廳) office by an individual named Yi Jae-du(李載斗) revealed a plan and conspiracy of a person named Kim Sun-seong(金順性), who allegedly attempted to enthrone Yi Ha-jeon(李夏銓), and round up military officers to attack the Ijeong-cheong office as well as the Main palace.
    After an investigation was conducted by the Podo-cheong office, interrogation(Chuguk, 推鞫) was initiated. Kim Sun-seong confessed his intentions and also his actions to conspire for a coup, supposedly out of frustration of the current state of affairs, such as the steep rise in the rice price due to a year of bad harvest, and subsequent unrest spreading throughout the country. He was summarily executed for his crime, which was high treason(謀反大逆罪) no less. Meanwhile, King Cheoljong tried to spare the life of Yi Ha-jeon, who was the successor of Deokheung Daeweon-gun, and ordered to exile him to a house arrest(圍籬安置) on the Jeju-do island. However, during ensuing rounds of the King’s personal interrogation(親鞫), Yi was eventually executed(賜死) as well.
    This attempt at a coup, alongside the Peasantry war which broke out in the Imsul-year, was another example of a disruptive uprising staged by the military officers from the Jeolla-do region. In legal terms the incident could also be regarded as a high treason case involving a royal family member. People who were politically involved in the scandal were the ones who earlier had agreed with King Jeongjo(正祖)’s treatment of Eun’eon-gun, or have been part of the Noron party’s Cheong’ron(淸論) and Byeokpa(僻派) factions, or the closest aides of Crown prince Hyo’myeong, some of whom –during King Heonjong(憲宗)’s reign- had marital relationships with Jo Deug-yeong(趙得永) and Jo Byeong-hyeon(趙秉鉉). We can see examples of that sort from the case of Yi Ha-jeon’s cousin (from his aunt) marrying Yi Ha-eung(李昰應).
    Later, Cheoljong, who was the son of Eun’eon-gun, died without an heir. Yi Ha-eung’s father Nam’yeon-gun was the descendant of Inpyeong Daegun(麟坪大君), and was later made the heir of Eunshin-gun by King Jeongjo.
    After Yi Ha-jeon died, descendants of factions who previously sided with King Jeongjo and Crown prince Hyo’myeong on the late Crown prince Sado issue gathered around Yi Ha-eung and the Pung’yang Jo house, Yi Ha-eung’s son Gojong(高宗) was named as the heir of King Cheoljong at the order of Queen Shinjeong(神貞王后), and also as the adopted son of Ikjong(翼宗, another title of Crown prince Hyo’myeong). King Gojong posthumously restored the honor of Yi Ha-jeon, honored the late Crown prince Sado as Jangjo(莊祖), and modeled his governance after that of King Jeongjo.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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